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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존엄성은 안녕하십니까?

문화포털 기자단 2015-09-25
당신의 존엄성은 안녕하십니까?

당신의 존엄성은 안녕하십니까?

- 연극 <프라이드> -

 

 

 

지난 20157. 각종 SNS는 무지갯빛으로 물들었습니다. 미국에서 동성 결혼이 합법화되었음을 축하하기 위해 동성애의 상징인 무지개로 프로필 사진을 바꾸는데 수많은 이들이 동참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뉴스를보면 동성애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아직 대한민국 사회는 물론이고 미국에서조차 자유롭게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히기 쉬운 것은 아닙니다. 60여 년 전만 해도 동성애는 하나의 질병으로 인식되었으니까요.

연극 <프라이드>는 성 소수자를 향한 편견이 존재하는 사회 속에서 개인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연극으로,  2008년 영국에서 초연되고 우리나라에는 작년에 이어 두 번째 무대에 오른 작품입니다. 표면적으로는 동성애에 관한 이야기지만, 단순히 동성애자들만 이 연극에 공감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데요. 과연 어떤 내용의 연극인지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연극 <프라이드>는 1958년과 2015년의, 두 시간대를 번갈아가며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두 연도에서 주인공들의 이름이 올리버, 필립, 실비아로 동일하다는 사실입니다. 이름에 따라 연기하는 배우도 3명이기 때문에 마치 1958년의 주인공들이 환생해서 2015년에 인연을 맺고 있는 듯합니다. 


 

  

1958년의 필립(좌)과 올리버(우) ⓒ 연극열전



1958년의 올리버는 평범한 동화작가입니다. 그는 함께 일하고 있는 실비아를 만나기 위해 그녀의 집을 방문했다가 필립을 만나게 됩니다. 필립을 본 순간, 그는 그를 아주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고 결국 자신이 필립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됩니다. 필립은 부동산 중개업자로, 열심히 일을 하지만 자신이 살고 는 곳에서 벗어나본 적 없는 처지를 답답하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그는 올리버와 마찬가지로 필립을 본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런 생각에 혼란스러워하다가 결국 올리버의 구애를 거부합니다. 자신이 올리버를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힙니다.



그러나 상처받는 것은 올리버 뿐만이 아닙니다. 필립의 부인 실비아는 자신이 필립과 사이가 매우 좋지만 둘 사이에 무언가 결핍되어 있음을 직감합니다. 어느 날 필립과 올리버가 동성애 관계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그녀는 슬퍼합니다. 그러나 그 슬픔은 자신의 남편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에 대한 충격이 아닌 체념을 통해 느껴지는 슬픔입니다. 

 

 



 

의사에게 치료를 받고 있는 올리버 ⓒ 연극열전


 

동성애에 대한 사회의 억압 때문에 필립은 자신의 정체성을 부인하면서 괴로워합니다. 올리버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 때문에 아파합니다. 그리고 실비아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외로워합니다. 이렇듯 1950년대의 이야기는 동성애에 대한 경직적인 사회 분위기가 개인에게 주는 고통을 보여줍니다.

 

 


 

 

 2015년의 필립(우)과 올리버(좌) ⓒ 연극열전


 

반면 2015년의 분위기는 확연히 다릅니다. 1958년에서처럼 필립과 올리버는 동성애자, 실비아는 이성애자이지만 세 명의 관계는 달라집니다. 우선 실비아는 올리버의 절친한 친구로, 올리버가 실연의 아픔을 토로하면 언제든지 달려와서 욕해주는 친한 사이입니다. 올리버와 필립은 커플이지만 둘의 가치관이 맞지 않아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를 반복합니다. 1958년과 반대로 셋은 티격태격하면서도 결국에는 인생을 함께 하는 삶을 선택합니다.

2015년이 동성애자들이 살기에 완벽한 시대는 아닙니다. ‘게이스럽다’라는 단어를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동시에 여자들은 게이 친구를 갖기를 소망하는 아이러니한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동성애자들의 축제인 ‘프라이드 퍼레이드’를 참가 할 수 있을 만큼 세상이 한걸음 더 나아갔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1958년의 주인공들은 끊임없이 외로워합니다. 그들은 분명 하나의 언어로 대화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통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올리버와 필립은 서로를 좋아하지만 상처를 주고 받고자 관계는 결국 파국에 치닫습니다. 실비아는 곁에 필립이 있지만 외롭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모습은 마치 길을 잃은 영혼처럼 느껴지지요. 필립의 사랑을 받지 못했음에도 실비아는 떠나며 이런 말을 남깁니다. "괜찮아요. 다 괜찮아질 거에요." 이 대사는 1958년에서 2015년의 올리버의 귀에까지 들립니다. 아마 이 메시지는 실비아만의 것은 아닐 것입니다. 동성애가 억압받던 시절, 고통스러워도 굴복하지 않고 끊임없이 저항한 사람들이 다음 세대의 소외된 사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입니다.

 



 

 연극 <프라이드>의 모든 배우들 ⓒ 연극열전


 

사회에 존재하는 차별과 억압은 비단 동성애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습니다. 여성의 참정권은 1789년에야 인정되기 시작했고, 미국의 노예 해방은 1863년에 이루어졌습니다.  너무나 당연하게 노예와 여성은 아래에 위치해있다고 인식했던 것입니다. 연극을 보는 사람들이 필립, 올리버, 실비아에 공감하고 마음 아파 하는 것은 우리들도 이런 사회의 편견과 억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가만히 있는다고 사회가 변하지는 않습니다. 억압을 받으면 받을수록 우리는 더 열심히 저항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를 지켜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연극의 제목인 ‘프라이드’는 축제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마음속에 품어야 할 무언가가 아닐까요? 2015년에 살고 있는 필립의 대사가 그 의미를 더욱 짙게 만듭니다.  


“내가 너에게 물었잖아. 그 눈이 뭘 원하는 것 같았냐고.
넌 말했어. 존엄성이요.
타인에게 자신의 목소리가 닿기를 원하는 의지. 거기에서 오는 용기.
용기 있는 목소리가 가지고 있는 프라이드.

그걸 원하고 있습니다.

 


 

* 공연 정보
- 공연명 : 프라이드
- 기간 : 2015년 8월 8일(토)~2015년 11월 1일(일)
- 장소 : 수현재씨어터
- 출연 : 배수빈, 강필석, 정동화, 박성훈, 임강희, 이진희, 이원, 양승리
- 주최 : 연극열전

 


- 작성자 : 문화포털 기자단 김현정(글) / 정미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