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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100]고구려 고분벽화를 통해 본 고구려인의 삶

당시 고구려인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고구려 고분벽화의 의미에 대해 나타낸 영상(대본)내레이션 고대 사회를 이해하고자 할 때 그림은 문자 이상의 많은 이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그림은 기호보다 쉽게 눈에 들어오고 마음속으로 읽히기 때문일 것이다.무덤 속에 그려진 벽화를 통해 고구려인의 삶과 생각을 담았던 고구려 고분벽화,찬란한 고구려의 역사가 담긴 고분벽화를 만나보자 내레이션 고구려 사람들이 언제부터 무덤 속에 벽화를 그렸는지 확실하게 밝혀진 건 없다.안악 삼호분 고분 벽화가 고구려 초기벽화의 모습을 나타내는 귀중한 자료로 전해지고 있다.고분벽화는 고구려가 도읍으로 삼았던 평양과 지안 지역을 중심으로 그리기 시작해점차 주변으로 퍼져 나갔고, 약 천삼백 년 뒤인 이십세기 초,고구려 멸망 후 소문으로만 떠돌던 벽화에 대한 이야기가평안남도 강서군수를 지내던 이우영이라는 사람에 의해 다시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내레이션 무덤 속에 잠들어 있던 고분벽화,벽화 속에는 당시 고구려 사람들의 생활과 생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인터뷰 고구려 고분벽화는 주로 고구려 사람들이 죽은 뒤의 세계에 대해서그들의 생각이 나 소망을 펼쳐놓은 그런 작품입니다.그래서 초기의 작품에는 현세에 살던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는 데 초점을 두었기 때문에,고구려인들이 그 당시에 어떻게 살아가고 있었는지를 사진 찍듯이 그대로 옮겨 놓아서우리가 그 시대로 여행할 수 있는 좋은 매개체가 되기도 합니다.그래서 기본적으로 고분벽화라고 하는 것이 내세관의 표현이다.죽은 뒤 세계관에 대해 소망과 꿈을 담은 표현이다. 이렇게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내레이션 국내외의 역사가, 문화예술 전문가들에게 역사적 상상력,문화예술적 영감의 원천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고구려 고분벽화현재 백이십여개의 벽화가 발견되어당시 고구려 사람들의 생기를 전해주고 있다.한국 문화의 원형을 담은 고구려 고분벽화,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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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0

[한국문화100]떡, 그 속에 담긴 한국인의 다양한 이야기

한국의 전통음식인 떡에 대한 소개영상 한국문화 100 떡, 그 속에 담긴 한국인의 다양한 이야기 나레이션 한국의 거리에서는 떡집을 쉽게 찾아볼수 있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음식인 떡은 예로부터 집안의 크고 작은 일들이 있을 때마다 즐겨먹던 친숙한 음식입니다. 요즘도 명절, 결혼식, 생일 등 다양한 행사에서 떡을 찾고 있는데요 왜 한국인들은 이토록 떡을 찾는 것 일까요? 쌀 농사를 주로 짓던 옛 선조들은 남은 쌀 재료와 잡곡을 섞어서 떡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우리 민족이 정확히 언제부터 떡을 만들어 먹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발굴 된 떡시루 등을 놓고 볼 때 청동기 또는 초기 철기시대부터 먹지 않았을까 짐작이 됩니다. 한국인들에게 떡은 오랜기간동안 많은 사랑을 받는 전통음식이었습니다. 요즘처럼 인공 조미료가 가미된 자극적인 음식과는 달리 쌀, 콩, 팥 등의 천연 재료만으로 만들어지는 웰빙 음식인 떡은 지금까지도 건강식으로 한국인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죠 먹거리가 많지 않던 시절부터 떡은 크고 작은 행사에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음식이었습니다. 특히 결혼과 같은 집안의 경사에 떡은 필수품이었는데요 행사별 떡의 자세한 의미에 대해서 알아볼까요? 인터뷰 혼례 때는 찰떡(찹쌀떡)을 가지고 인절미를 비롯한 여러 가지 떡을 만들어 이바지로 보내고 있어요. 그 우수한 떡의 세계화를 위해서 우리가 좀 더 노력하여 우수한 한국의 전통문화를 세계 속에 꽃피는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백일 때는 하얀색으로 떡을 만들죠. 그건 맵쌀가루로 물을 반죽한 후 시루에 안쳐서 만드는데, 아이가 순수하게 무럭무럭 자라라는 의미로 만들고... 또 나쁜 것을 막아주고 건강하게 잘 자라라는 의미로 수수팥떡을 열 살까지 해서 먹습니다. 나레이션 과거에는 직접 집에서 떡을 만들어 이웃과 나누어 먹는 풍습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대화가 되면서 그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웰빙 열풍을 타고 직접 떡을 만들어 먹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데요, 집에서도 손쉽게 만들 수 있는 떡에 대해서 알아볼까요? 인터뷰 이것은 단자라고 하는 떡이에요. 단자라는 것은 안에 소가 들어간 것을 말하는데 이것은 삶는 떡입니다. 경단은 소가 없는 것을 말하고 이렇게 소가 들어간 것을 단자라고 합니다. (단자는)어린아이 생일과 어르신들 생신 상에 많이 올려요. 이렇게 소를 넣고 바람을 빼줘야 해요, 바람이 안 빠지면 삶을 때 터집니다. 잘 안 터지게 꼭꼭 주물러서 동그랗게 돌려준 다음에 삶으면 됩니다. 자막 - 물이 펄펄 끓을 때 단지를 넣어준다. - 단지가 서로 달라붙지 않게 가끔 저어준다. - 물위에 단지가 뜨면 (약 6~7분 정도) 건져낸다. - 건져낸 단지는 완전히 식을 때까지 찬물에 헹구어낸다, - 찬물에 헹궈낸 단지는 자연 건조 시킨다. 이때 설탕을 조금 뿌려주면 수분이 빨리 제거된다. 인터뷰 이제는 삶은 단지에 고물을 묻히는 작업입니다. 자막 - 카스테라가루, 거피 팥, 녹차 가루 등 식성과 기호에 따라 다양한 고물을 만들어 묻히면 된다. -대추와 해바라기 씨 등으로 마무리해주면 끝. 나레이션 자 이제는 여러분도 집에서 맛있는 떡을 만들어 볼 수 있겠죠? 최근 한류열풍으로 인해 k푸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떡을 찾고 배우려는 외국인들이 참 많아 졌는데요, 우리 전통음식인 떡에 대한 외국인들이 반응이 상당이 흥미롭습니다. 인터뷰 매우 흥미롭고, 전통적입니다. 한국의 전통문화를 배우게 돼서 즐겁습니다. 우리 떡,한과가 크고 푸짐한 것 보다는 한입에 쏙들어가는 것, 고물이 떨어지는 것보다는 그냥 먹을 수 있는 것, 이처럼 더 기능적인 식품이 들어 가야되고, 아름다워야 되고, 또 좀 두고 먹어도 굳지 않아야 되고, 이런 점들이 더 보완이 된다면 정말 훌륭한 떡, 한과가 되지 않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이)떡을 하면서 내가 먹는 떡이 아니라 나누어 먹는 떡으로, 항상 가족을 생각하고 내가 좋은 일이 있을 때에 동네사람이나 직장동료들과 나누어 먹는 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아마 떡은 사랑이고 나눔이고 우리민족성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내레이션 이처럼 몸에도 좋고 맛도 좋은 떡은 한국인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이 즐길 수 있는 웰빙 식품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 우수한 떡의 세계화를 위해서 우리가 좀 더 노력하여 우수한 한국의 전통문화를 세계 속에 꽃피는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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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0

[한국문화100]마을 신앙의 중심 서낭당

민중의 염원과 기원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마을 신앙의 중심 서낭당의가치를 재조명한다. 제목 : 마을 신앙의 중심 서낭당 내레이션 성황은 서낭당에 모신 신을 뜻하는 것으로 성황당과 서낭당은 같은 의미를 지닌다. 지금은 산업화와 도시화로 많이 사라졌지만 마을 어귀나 산허리에서 신앙의 대상이 되는 돌무더기, 오래된 나무, 작은 당집 그리고 나무와 당집이 같이 있는 형태 등으로 서낭당은 존재했다. 서낭당에는 오방색을 뜻하는 오색띠가 매어져 있거나 금줄이 쳐져 있는데 이러한 것은 복을 부르고 사악함을 쫓기 위해서이다. 사람들은 서낭당을 개인적 혹은 마을공동체 신앙의 수호신 삼아 섬겼다. 인터뷰 김창호 /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서낭당이 지금은 많이 없어졌습니다. 남아있는 서낭당들도 무형문화재라는 입장에서 보존되고 있는 차원인데요. 사실, 서낭당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마을 공동체의 표상과도 같은 것입니다. 서낭제를 통해서 마을 사람들이 하나가 되기도 하고 그 안에서 다음세대에 대한 마을의 전통을 교육하는 것도 일어납니다. 굉장히 순기능적인 여러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마을이 옛날 같지 않고 아파트와 같은 분할된 가구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공간으로 변해서 옛날에 한마을이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하나가 되었던 모습은 찾기가 힘든데, 기본적으로 전통적인 것이라는 입장 이외에도 한 공간에서 사는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뜻을 모을 수 있었던 계기가 바로 서낭당을 통해서 주어졌던 것인데요. 그런 부분들이 오늘날에도 꼭 필요하고 없어졌기 때문에 아쉬운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막 성황당 1937년 발표된 정비석의 단편소설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토속신앙과 인간의 삶을 신선하고 조화롭게 묘사 내레이션 우리의 문학과 노래에는 서낭당이 자주 언급되었다. 그만큼 우리 민중들과 가까웠던 것이 서낭당이다. 정비석의 소설 성황당은 후미진 평안도 산골에서 숯을 구워먹고 사는 순이 부부와 그녀를 노리는 사내들의 이야기를 원초적이고 관능적으로 그린 소설이다. 특히, 성황당과 순이의 관계를 통해 토속신앙과 인간의 삶을 신선하고 조화롭게 묘사했다. 자막 깊은 산중에서 숯을 구워 생계를 꾸려가는 현보의 아내 순이는 모든 일을 성황님의 은덕으로 여기며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어느 날, 현보를 도와 숯가마에 불을 때던 순이가 더위를 참지 못하여 옷을 벗고 개울에서 목을 할 때, 예전부터 순이를 노리고 있던 산림간수 긴상이 그녀의 옷을 감추고 협박을 한다. 순이는 이에 단호히 대항하고 앙심을 품은 긴상은 순이의 남편 현보를 산림법 위반으로 고발하여 감옥에 가둔다. 이때, 순이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던 칠성이 찾아와 긴상과 칠성은 순이를 사이에 두고 격투를 벌인다. 며칠 뒤, 다시 칠성이 나타나 순이에게 현보가 3년은 감옥에서 지내야 할 것이라는 말과 함께 같이 도망칠 것을 종용한다. 그가 가져온 분홍 항라적삼과 수박색 목메린스 치마에 마음이 끌린 순이는 칠성을 따라나선다. 그러나 30리쯤 갔을 때 산을 떠나 살아야 한다는 사실과 현보에 대한 그리움, 무엇보다도 성황님의 벌에 대한 무서움 때문에 순이는 칠성에게서 도망쳐 집으로 돌아온다. 순이가 “성황님 ! 성황님 !” 을 외며 집 앞에 다다랐을 때 방안에서는 “에헴” 하는 현보의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이날 밤 따라 접동새와 부엉새 소리는 순이의 가슴을 파고드는 듯이 정다운 것이었다. 자막 경상북도 안동시 하회마을 내레이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민속적 전통과 건축물이 잘 보존되어 있는 경북 안동시 하회마을에서는 두 가지 형태의 서낭당을 여전히 확인할 수 있다. 하회마을 가장중앙에는 삼신당이라는 이름을 가진 나무가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다. 하회마을이 조성될 때 심은 것으로 여겨지는 나무의 수령은 600년이 넘었다고 한다. 신목을 서낭당 삼아 정월대보름에는 제를 올리며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과 공동의 소망을 빌기도 한다. 인터뷰 손주호 / 대구광역시 지금 만나고 있는 연인과 안 싸울 수는 없겠지만, 싸우더라도 서로 잘 잡으면서 이 운명 끝까지 꼭 가져가고 싶습니다. 김명숙 / 서울특별시 저를 비롯해서 제 가족과 친지, 주위의 분들, 다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김문배 / 서울특별시 곧 아이가 태어납니다. 아이가 무사히 잘 태어나고 건강했으면 좋겠다고 그것을 빌러 왔습니다. 내레이션 특히, 삼신당은 자식을 귀하게 여겨 후손이 잉태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잘 들어주어 마을 전체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하회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앞산의 중턱에는 또 다른 서낭당인 중당이 조성되어 있다. 서낭당과 같은 마을제당은 주민들의 종교심성을 공유할 수 있는 신성한 영역이다. 이 곳에서 사람들은 마을의 신을 중당에 모셔와 제사 지내고 서로의 안녕을 기원한다. 해설사 인터뷰 박순화 / 안동문화관광해설사 중당은 국신당을 모셨어요. 국신당은(공민왕의 모신 것으로) 공민왕이 안동으로 70여일을 몽진을 오셨어요. 홍건적의 난을 피해서, 그래서 안동에는 공민왕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아마 그 때문에 조성되었지 않나 싶습니다. 풍산류씨들이 하회마을에서 많은 인재가 특히, 영의정 서애 유성룡 대감 같은 명재상이 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자막 국신당은 신격화된 고려의 공민왕을 의미하며 특히 안동지역에서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신앙되고 있다. 자막 강원도 강릉시 내레이션 강원 강릉시에서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강릉단오제 기간 동안 대관령산신을 모셔와 서낭제를 지낸다. 자막 학산서낭당 강릉단오제의 주신 대관령국사성황 범일국사가 태어난 학산의 서낭당으로 매년 음력 4월15일 머물러 굿과 제례를 올린다. 내레이션 강릉고을을 지켜주는 대관령 산신께 제사하고 험준한 대관령 산길의 안전을 기원하며 풍작과 풍어 집안의 태평 등을 기원한다. 제를 시작으로 진행되는 강릉단오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대표적인 축제로 신과 인간이 자연스럽게 만나 하나가 되는 만남의 공간이다. 서낭당에서 마을의 수호신을 섬기는 것은 단순히 기원의식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식, 심적인 유대, 연대감을 강화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민중이 가깝게 여기는 마을제당이자 개인제당이었던 서낭당. 앞으로도 소중히 지켜야할 우리민족의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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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포털
등록일
2015-10-20

[한국문화100]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질서이자 삶의 지혜, 풍수

자연의 질서와 인간의 질서를 조화롭게 계승시켜온 조상들의 삶의 지혜 풍수에 대해 알아본다. ---------------------------------------------------------------------------------------------------------- 자막 : 풍수(風水) 내레이션 : 풍수,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바람’과 ‘물’이라는 뜻입니다. 동아시아만의 땅과 공간을 해석하고 활용하는 고유한 사상인 풍수는 음양오행설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국가의 자연관을 잘 나타내고 있고, 실제로 조경과 건축 등에 영향을 미쳤던 사상인데요. 자막 : 음양오행설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국가의 자연관을 잘 나타내고 실제로 조경과 건축 등에 영향을 미쳤던 사상, 풍수 내레이션 : 풍수 사상은 중국 전국 시대 말기 이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삼국 시대 이전에 전래되었는데, 일반적으로는 주로 묘지나 주택, 명당과 같은 터를 잡을 때 풍수가 쓰였습니다. 자막 : 풍수사상은 중국 전국시대 말기 이전부터 시작,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 이전에 전래됨. 내레이션 : 우리나라에 풍수이론이 수용된 시기를 추정하면, 역사적 문헌에 8세기임을 나타내고 있는데요. 도선이라는 사람이 풍수지리설의 시조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막 : 풍수의 이론은 중국에서 비롯되었으나 8세기경 우리나라에 도입된 뒤 우리 나람의 생각과 가치가 더해짐. 자막 : 도선(道詵, 827~898) 도선은 신라 말기의 승려이자 우리나라 풍수설의 대가. 통일신라시대 김천 지역의 청암사를 창건한 승려로 도선 국사로 널리 알려짐. 내레이션 : 풍수는 땅의 질서와 이치를 이해하는 전통적 지혜이자 지리과학으로서, 현재까지 한국의 취락입지 및 조경, 공간배치와 구성, 건축 등에 널리 활용되고 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 이공원 / 서경대학교 경영대학원 풍수지리 교수 풍수지리는 장풍득수의 준말로서 바람을 감추고 물을 얻는 원리가 풍수지리인데, 대부분 사람은 풍수를 미신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풍수지리라는 것은 태양과 지구가 어떤 관계인지를 설명하는 이론이 되기 때문에 합리적이고, 특히 우리나라 한민족이 오천 년간 살아오면서 누리고 있는 문화의 많은 부분이 풍수에 깃들여져 있기 때문에 풍수지리는 우리 생활에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내레이션 : 풍수지리의 이론은 매우 상식적이고 본능적이며 자연발생적인 것이 많은데요. 대표적인 예로 잠자리는 우리가 무의식, 무방비 상태에 있기에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데, 잠자리에서 중요한 것은 안정감이 있으면서 편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막 : 풍수지리의 이론은 매우 상식적이고 본능적이며, 자연발생적인 것이 많음. 내레이션 : 잠자리를 편안하게 하기 위해선 물론 방위에 따라 기운이 달라지지만, 우선적으로 머리를 방문에서 먼 곳에 두고 그 다음 창문에서 먼 곳에 두는 것이 좋다고 하는데요. 자막 : 잠자리를 편안하게 하기 위한 풍수 인테리어 - 머리를 방문에서 먼 곳에 두면 좋음 - 그 다음에는 창문에서 먼 곳에 두면 좋음 내레이션 : 풍수적 관점에서 생각하면 대각선 시야가 가장 커야 외부 침입에 대한 불안감을 많이 덜 수 있고, 또한, 화장실도 침대에서 멀어야 좋다고 합니다. 자막 : 잠자리를 편안하게 하기 위한 풍수 인테리어 - 대각선 시야가 가장 커야 외부 침입에 대한 불안감 감소 - 화장실도 침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좋음 자막 : 조상들이 오랜 시간 땅과 자연을 세심한 관찰을 바탕으로 만든 삶의 지혜, 풍수(風水) 내레이션 : 자연의 질서와 인간의 질서를 조화롭게 계승시켜온 풍수, 우리 조상들이 오랫동안 쌓아온 땅에 대한 깨달음과 자연에 대한 세심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만든 삶의 지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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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5-10-19

[한국문화100] 그리운 그 곳, 금강산

금강산은 우리강산 중 가장 빼어나고 수려한 상징물이다. 특히 남북화해 및 교류의 물꼬를 튼 상징이기도 하다. 동해에 임박한 태백산맥 북부의 아름다운 명승지, 금강산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그 이름이 알려져 있다. 민족의식의 샘터 금강산에 대하여 알아보자. 금강산 대본 자막 고려국에 태어나서 금강산을 한번 보는 것이 소원이다. - 송나라 시인 소동파 천길 흰 비단을 드리웠는가 만섬 진주알을 홑뿌렸는가신라 문인 최치원 금강산 관광 당시 인터뷰 김두진/관광객 금강산을 왔다 가는데감개가 무량합니다. 정선영/관광객 (금강산 방문에) 오늘 너무너무 기쁩니다. 자유롭게 만나고 서로 오며 가며 불편 없이 다녔으면 좋겠습니다. 자막 산 전체가 수정으로 만들어진 듯 빛나는 보석 그 자체이다. 그리운 그 곳, 금강산 금강산의 동서 너비는 약 40KM, 남북길이는 약 60KM, 그 면적은 약 530㎢ 8개 연못, 선녀들이 찾았다던 전설이 내려오는 이곳은 아름다운 은빛 줄기를 가진 상팔담이다. 금강산관광 당시 인터뷰 김영덕/서양화가 대단합니다. 금강산 이쪽이 원래 물 맑고. 공기 맑고 단풍이 물들었는데, 완전히 순수한 붉은 색입니다. 붉은색으로 가기 전, 노란색, 주황색 (단풍의 경치가) 대단합니다. 자막 금강산에 담긴 수천가지의 색들이 어우러져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금강산의 가을은 기암절벽과 단풍이 어우러져 한곡의 멋진 풍악을 울린다 하여 풍악산이라 불려 운다 자막 세존봉에서 본 장전항 내금강에서 외금강 해금강으로 이어지는 금강산의 웅대한 면모. 이정수/사진작가 금강산을 보지 않고는 천하의 절경를 논하지 말라는 말이 있듯이 금강산을 조명할 때 가장 감사하다고 할까,자연이 주는 보배라고 느껴질 때 또 현재도 금강산은 훼손이 안됐다는 것을 보면.. 가장 큰 매력으로 뽑을 수 있습니다. 자막 봄에는 금강, 여름에는 봉래, 가을엔 풍악, 겨울엔 개골산 여러 이름을 갖은 금강산의 천 가지의 얼굴, 만 가지의 표정을 다시 볼 수 있도록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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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6

[한국문화100]우리의 문자, 한글

한글의 과학적 우수성과 가치에 대해 알아본다. --------------------------------------------------------------------------------------- 내레이션 우리나라의 말이 중국말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이런 까닭에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그 뜻을 담아서 나타내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니라. 내가 이것을 딱히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쉽게 깨우쳐 날로 씀에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내레이션 조선 제4대 임금 세종대왕은 백성들이 말은 할 수 있어도 글을 알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그리하여 세종대왕은 우리의 고유문자인 훈민정음을 창제하게 되었다. 내레이션 ‘훈민정음(訓民正音)’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당시의 양반 사대부들은 한글이라는 문자의 출현을 별로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중국 중심의 세계관에 젖어 있어, 한자에 비해 한글을 낮잡아 보는 태도가 팽배해 있었기 때문이다. 내레이션 세종대왕은 한글이 점차 보급되면 서민들이 생각과 뜻을 글로 적을 수 있게 되고, 이로 인해 일상생활에서 한글이 활용되어, 서민들의 생활 개선과 의식 성장을 가져올 것이라 굳게 믿었다. 인터뷰 정희원 /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한글의 창제정신은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 창제 시에 쓰셨던 어제 서문에 나타나 있는데요,우리가 보통 자주, 실용, 애민 이렇게 세 가지로 정리를 할 수 있겠습니다.자주정신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말이 중국말하고는 다르다. 그래서 우리만의 독자적인글자가 필요하겠다고 말씀하신 부분에 자주정신이 들어가 있다고 볼 수 있고요.실용정신은 쉬운 글을 만들어서 사람마다 널리 편안하게 쓰게 하겠다고 하신 데서우리가 실용정신을 엿볼 수 있고요.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게 애민정신인데,어리석은 백성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혹은 표현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글을 몰라서 나타내지 못하니까 이것을 매우 안타깝고 가엾게 여겨서 새 글을 만들겠다고 하셨죠.그래서 자주정신, 실용정신, 그리고 애민정신 이렇게 3가지가 한글창제의 동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내레이션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은 우주의 원리를 담고 세상 모든 소리를 담을 수 있는 문자를 만들고자 했다. 하늘과 땅, 사람의 모습을 담은 현대의 한글은 자음과 모음 24자를 조합하여 무려 11,172자의 글자를 만들 수 있다. 내레이션 한글의 글자형태는 발음하는 소리에 근거하여 사람의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보고 만들었다. 예를 들어 미음은 ‘ㅁ’, ‘ㅁ’, 미음에서 발음이 더 세어지면 비읍으로 ‘ㅂ’,‘ㅂ’, 다시 비읍에서 발음이 좀 더 세어지면 피읖으로, ‘ㅍ’, ‘ㅍ’, 이처럼 글자의 형태와 소리 나는 구조가 일치하면 기억하기 쉬워져 처음 접하는 외국인도 한 시간 정도 배우면 문자 시스템을 이해 할 수 있을 정도로 한글은 배우기 쉽게 만들어졌다.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는 ‘슬기로운 자는 아침을 마치기도 전에 깨칠 것이오, 어리석은 자는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 라고 전해지고 있다. 내레이션 한글 사용을 확대하는 데에는 여성들의 역할이 컸다. 양반 사대부 계층에서는 여성도 한문 교육을 받는 일이 많이 있기는 했지만, 여성들끼리, 또는 여성과 남성이 편지를 주고받을 때에는 주로 한글을 많이 사용했던 기록들이 남아 있다. 내레이션 우리 민족의 글에 ‘한글’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붙여서 사용한 사람은 주시경이다. 주시경은 개화기에 우리말과 글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교육과 연구에 힘쓴 사람인데, 그 후로 ‘한글’이라는 명칭이 일반화 되었다. 내레이션 백성들이 쉽고 편리하게 문자 생활을 도모하도록 만든 한글, 세계에서 유일하게 만든 사람과 창제시기, 창제 원리까지 알고 있는 신비한 문자 한글은 교육을 통해 세계 속에 알리는 것뿐 아니라 한글을 활용한 디자인 제품을 통해서도 세계적으로 그 모습을 알리고 있다고 한다. 인터뷰 이건만 / 이건만 CEO 가장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적 유산이 뭘까 하다가 우리의 자연 발생적인 문화의 대표성을제가 고민해 보고 연구를 해본 결과 한글이라는 주제가 가장 한국을 대표하는 주제 같아요. 내국인들도 좋아하지만 특히 외국인들이 굉장히 좋아하는 거 같아요.다른 데 가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문양이고, 특히 한글이 디자인적인 요소로 완벽하거든요. 굉장히 모던한 스타일이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적 요소로 생각하고 있고, 그래서 한글이 들어간 제품들을 보면 훨씬 더 선호하고, 굉장히 좋아들 하는 거 같습니다. 내레이션 언어는 단순히 의사소통의 수단만이 아니라, 민족의 역사와 얼이 담겨 있으며, 고유 언어를 잃은 민족은 더 이상 민족이라 말하기 어렵다. 일제 치하에서 우리 민족은 우리말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역경을 헤치고 ‘한글’을 지켜내어 민족의 역사를 이어갈 수 있었다. 앞으로도 한글을 잘 보존하고 발전 시켜 나감으로써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세계 속에 널리 알리는 노력이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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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포털
등록일
2015-10-20

[한국문화100]대한민국을 이끄는 원동력 IT

[한국문화100]대한민국을 이끄는 원동력 IT IT, 정보통신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의 하나이다. 한국의 IT산업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며 월등한 기술력으로 세계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속도와 응집력으로 성장하여 이제는 일상의 한 부분이 된 한국의 IT를 알아본다. IT대본 내레이션 대한민국은 전통과 현대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이제 우리는 K씨의 생활 안에서 전통과 현대를 넘어 대한민국이 품고 있는 미래 가능성을 확인하고자 합니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K씨는 스마트폰을 통해 버스의 예정 도착 시간을 확인합니다. 필요한 문서들 역시 어디서나 쉽게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 거리 어느 곳에서든 원하는 정보를 확인할 수 있고 커피 주문도 네트워크 안에서 자유롭게 진행됩니다. 스마트폰, 인터넷, 네트워크 등 우리 사회를 바꾸는 기술. 우리는 이것을 IT,? Information Technology, 정보통신기술이라고 부릅니다. 자막 IT,Information Technology, 정보통신기술 내레이션 정보를 주고받는 것은 물론 개발, 저장, 처리, 관리하는데 필요한 모든 기술이 정보통신기술, IT입니다. IT산업은 대한민국 미래 가능성의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정보의 변화와 융합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 있는 IT산업 분야에서 대한민국은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원석 / 연세대학교 컴퓨터과학과 교수 IT활용강국의 입지는 계속 살려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특히 지금처럼 단편적 요소, 데이터나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문화차원으로 승화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활용강국으로 계속 남게 되면 전 세계에서 새로 나오는 기술들은 다 우리나라에 먼저 오게 됩니다. 우리나라에 먼저 적용이 되고 제일 먼저 접하게 되어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내레이션 반도체, 소프트웨어, 이동통신기술, 복합전자기기 등 대한민국의 IT산업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세계 어느 곳보다 빠르고 높은 기술력과 보급률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실제 일상생활에서 IT는 보다 쉽고 밀접하게 우리의 생활 속으로 녹아들고 있습니다. 스마트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IT산업은 사람들의 삶을 보다 혁신적으로 바꿔놓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반도체 시장 점유율 등 많은 IT관련 지표에서 독주 체제를 굳히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IT기술력은 이미 세계 정상 수준이며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우리기업의 IT제품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IT기술이 가진 가능성은 무한해서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는 발전을 이루고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만 등장하던 가상현실이 이제 손에 잡힐 듯 다가와 있습니다. 놀라운 속도와 응집력으로 세계의 트렌드 중심에 있는 대한민국의 IT산업. 더욱 성장시키고 발전을 이뤄야 하는 우리의 중요한 미래 가능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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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9

[한국문화100]농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다, 풍물 굿

농악이라 불리는 풍물 굿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대본---내레이션이때 농사꾼들의 능률을 올려주기 위해서 한데 모여 흥을 돋우는 의식을 벌였는데 이를 풍물 굿 이라고 한다.주로 농사를 할 때 행해져 농악으로도 알려져 있는 풍물 굿은 농경사회를 이뤄온 우리 선조들의 생활상을 알아볼 수 있는 대표적인 농촌문화다.풍물 굿이 주로 타악기를 이용한 흥겨운 리듬의 굿판을 벌이는 게 기본 형식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때때로 춤과 노래등의 다양한 퍼포먼스를 통해 재미를 더해주곤 한다.뿐만 아니라 서로 음식도 나누어 먹고 대화도 하는 등 다목적 기능의 종합예능 형태를 띠는데 지금으로 말하자면 버라이어티 행사와 같다고 할 수 있겠다. 풍물 굿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는 없으나 한민족이 한반도에 정착하여 농경생활을 시작했을 때부터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공동노동을 하면서 노동의 애환을 달래주는 음악과 춤은 어느 나라에나 존재한다.그러나 풍물 굿은 두레라는 강력한 조직에 힘입어 상당히 체계적으로 발달하였다. 인터뷰풍물 굿이란 농악이라고도 하는데요, 소위 풍물 꾕과리, 징, 장구, 북, 소고 등의 타악기들을 동원을 하고 여기에 음악적인 요소, 무용적인 요소, 연극적인 요소 등이 종합적으로 결합되어져 만들어지는 우리나라의 전통 공연예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풍물 굿은 이른바 집단적인 신명이라고 하는 (한국인들이 신난다고 하는 것) 것을 가장 깊고 포괄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그런 역동성을 가지고 있는 공연 예술이라는 점에 가장 중요한 특징이 있겠습니다.내레이션풍물 굿의 형태와 특징은 지역마다 각기 다른 차이점을 보이고 있는데, 한국민속예술축제에 참가 한 팀들을 통해 풍물 굿을 만나보자.자막이서들소리보존회 (경상북도)경북 청도군 이서면에서 전승되는 농업노동 풍물굿으로 주민들을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다.내레이션우리선조들의 마을 공동 문화상을 알아 볼 수 있는 대표 전통 문화, 풍물 굿. 농경문화가 없어지면서 자연스레 풍물 굿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어졌지만 전통문화를 지키는 려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한 이 아름다운 우리의 문화는 계속되리라 믿는다.앞으로도 풍물 굿은 한국 최고의 농민예술로 우리들에게 많은 울림을 줄 것이다. 시대는 변했지만 한민족의 한과 정서는 영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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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3

[한국문화100]길거리 응원으로 하나되는 대한민국

한국문화100 ? 길거리 응원편 ? 구성대본 자막 대한민국 축구 경기가 열리는 날. 집에서 편히 응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4년마다 돌아오는 월드컵 시즌에는 남녀노소 길거리에 모여 대한민국을 외친다. 그들은 왜 거리에서 대한민국을 외치는가? int 박누리 / 직장인 다 같이 나와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응원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권경의 / 주부 아이들이(손주들이) 미국에 살거든요. 월드컵이 시작됐잖아요. 그래서 월드컵 열기를 아이들한테 보여주고 그다음에 한국의 긍지를 살려주기 위해서 새벽에 데리고 나왔어요. 이은진 / 학생 올해 처음 와봤는데, 정말 젊음의 열기가 많이 느껴져서 행복해요. 재밌어요. 남궁준 / 학생 제가 브라질에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정말 현장감을 느끼면서 저희 팀(한국)이 이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계속 함께 했던 거 같습니다. 김민아 / 학생 같은 동기들이랑 친구들이랑 같이 (축구경기)보고 하니까 그 열기랑 여기서(길거리 응원에서) 틀어주는 음악들이 같이 어우러지니까 감동이 몇 배는 더 됐던 거 같아요. 자막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에게는 한 명의 선수가 더 있다. 그라운드 밖의 하나 된 응원단 대한민국의 승리를 염원하는 12번째 선수. 선수들과 그라운드에서 응원으로 늘 함께뛴다. 이중근 / 붉은악마 서울부지부장 2002년 한·일 월드컵 이전에 저희(붉은악마)가 동화면세점 근처에서 저희끼리 소규모로 응원하던게, 월드컵 때 원정으로 응원을 가시는 분들과 원정을 안 가고 국내에 남아있는 붉은악마들과 일반 시민들과 함께 응원하려는 의도로 (길거리 응원을) 기획하게 된 겁니다. 자막 2002년 한일 월드컵을 통해 본격적으로 시작 된 길거리 응원. 당시 서울시청 앞에는 40만명이 전국에는 700만명이 거리에 모여 함께 대한민국을 외쳤다. 길거리 응원은 거리나온 사람들에게 대표팀 응원을 통해 하나 됨을 느끼고, 함께 즐기는 문화로 사랑받고 있다. 세대가 거듭 될수록 우리나라 고유의 응원문화로 더욱 발전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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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0

[한국문화100] 한민족의 성산, 백두산

우리나라 최고 높은 산, 정상에 위치한 천지는 한민족의 성지이다. 산세가 장엄하고 자원이 풍부한 한민족의 발상지인 백두산에 대해 알아보자. 백두산나레이션 높이 약 2,750m 총 면적 8천평방 킬로미터로 동아시아에서 가장 하늘과 맞닿아 있는 산,백두산이다. 백색의 부석이 얹혀 있는 모습이 마치 흰머리와 같다 하여 백두산이라 부른다. 이민부/한국교원대 지리학과 교수Q. 백두산이란?백두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입니다. 2744m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동북아시아 대륙에서도 가장 높은 산지이고 특이하게도 화산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깨끗하게 잘 만들어진 층층이 쌓인 성층화산으로 이루어져 있고, 화산채의 크기가 용암이 흘러내린 면적까지 하면 2만2천평 정도에 달하며 한반도의 10분의 1에 이르는 거대한 화산재입니다. 자막백두산 봄백두산의 봄은 6월 즈음에 돼서야 찾아온다. 장대한 백두 폭포로부터 봄의 기운이 느껴지는데 해발 2000미터, 백두산의 고산화원에 냉랭한 찬바람을 이겨내고 백두산의 영기를 받은 꽃들이 피어오른다. 자막백두산 여름백두산의 연평균 기온은 영하7.3도고 최저 기온은 영하44도에 달한다. 7월 중 잠시나마 짧은 여름이 찾아온다. 수면 10미터 깊이 있는 돌이 마치 잡힐 듯 천지의 물은 맑다. 자막백두산 가을한반도에서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9월 초, 백두산에는 일찌감치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 가을이 시작되는 것이다. 곱게 물든 가을풍경은 백두산의 웅장함을 느낄 수 있다. 이점수/ 사진작가Q. 백두산 등산 당시 모습?처음 백두산을 올랐을 때 웅장함과 장엄함의 기상적인 백두산의 느낌은 숨이 멈출 정도로 감개무량했습니다. 그리고 또 (백두산의 매력으로는) 가을에 백두산을 촬영 하다보면 온도가 내려가고 날씨가 추워지면 눈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10월이나 9월 하순에 백두산 등반 시 가을과 겨울이 공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자막백두산 겨울눈으로 뒤덮인 백두산의 설경이 장관인 이때. 바로 백두산의 겨울이 찾아온 것이다. 계곡 위로 두껍게 쌓인 눈은 이듬해 7월까지도 녹지 않는다. 하지만 한겨울에도 50도가 높은 뜨거운 물이 솟아오르는 백두산 온천의 신기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백두산은 산세가 장엄하고 자원이 풍부하여 일찍이 한민족의 발상지였으며,숭배되어 왔던 민족의 역사와 더불어 수난을 같이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민족의 영산(靈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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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0

[한국문화100]신성한 경계 금줄

한국인의 일생과 함께 했던 금줄. 부정을 막거나 신성한 대상의 경계를 나타내는 금줄의 가치를 재조명해본다. 제목 : 신성한 경계 금줄 내레이션 부정한 것을 금기한다는 뜻으로 걸쳐 놓은 새끼줄. 대문이나 길어귀, 신성한 대상물에 우리민족은 새끼줄을 매달아 경계를 표시하고 금줄이라 불렀다. 지역에 따라 그 형태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왼 방향 새끼를 꼬아 용도에 따라 상징적인 물건을 꽂았다. 인터뷰 김창호 /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금줄이라는 것은, 우리가 보통 금줄을 친다고 이야기 하지요. 금줄을 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냐면 우리가 사는 보편적인 공간에 아주 특별한 공간이 생겼을 때 그 공간을 보편적인 공간으로부터 분리해내는 기능을 하는 것입니다. 내레이션 악운이나 음습한 기운이 스며드는 것을 방지하는 목적을 가진 금줄은 마을의 기원을 비는 서낭당이나 신성한 대상물에 주로 설치한다. 신성한 경계라는 주술적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금줄을 친 당산나무를 범접하면 몸이 상한다거나 금줄을 함부로 제거하면 악귀를 만난다는 등의 금기가 존재하기도 한다. 하지만 금줄은 그 자체로 신성한 대상물이기 때문에 소원을 기원하거나 중요한 것을 지키기 위한 용도로도 활용된다. 특히, 집안에 아이가 태어나면 대문에 매달던 새끼줄의 형태가 금줄의 대표적인 사용 모습이다. 인터뷰 강호식 / 짚풀생활사박물관 아기를 낳으면 금줄이라고 해서 대문위에다 사람 머리 안 걸릴 정도로 매달아요. 아들을 낳게 되면 고추가 들어가고 종이 백지, 숯, 솔가지를 넣고. 딸을 낳게 되면 고추를 안 넣고 솔가지하고 숯하고 이렇게 세 가지(종이)만 꼈다고 해요. 인터뷰 인병선 / 짚풀생활사박물관장 아이한테 만일 부정한 것이 들어오면 아이에게 해로우니까 그것을 막는다는 개념도 있었지만 또 하나는 우리 집에 아이가 태어났다 손자, 손녀가 태어났다는 것을 마을에 알리고 그럼으로써 마을사람들이 축하도 해주지만 근신하는 것이지요. 함부로 들락거리지 않게 하는 경계의 의미도 있었습니다. 내레이션 금줄은 사회적 규약이며 약속이다. 우리민족 스스로가 창출해 냈던 자율적 공공질서였다. 지켜야 할 것, 침범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한 사회 구성원 스스로의 약속.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도 금줄이 가진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고 계승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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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0

[한국문화100] 생명의 흙, 황토

황토는 한국인의 정서적 감흥에 가장 잘 부합되는 색깔과 느낌이다. 가치를 알아보고 상징적인 의미에 대해 살펴보자. (황토 대본) 나레이션 중국 최고의 지리서 산해경, 세계기록문화유산 조선왕조실록, 최고의 의학전서 동의보감. 황토는 예로부터 우리 민족의 문화와 역사에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황토는 구들방, 초가집 등 주거문화를 시작으로 조상들의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재산이었다. 또한 예로부터 살아있는 생명체라 하여 많은 약성을 가져 무병장수의 흙으로도 불려 왔다. 인터뷰 노희명/서울대학교 응용생물학부 교수 황토란? 황토는 말 그대로 누런 흙을 뜻합니다. 영어로 보면 loess로 독일어 어언을 갖고 있는데, 나일강 유역에서 처음으로 발견 됐음에 이러한 이름을 갖게 된 것입니다. 나레이션 생명의 흙 황토, 황토는 학술적으로 바람에 의하여 운반되는 쌓인 황색의 광물질을 의미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암석이 풍화되는 과정에 생긴 토양’을 총칭하여 황토라 한다. 황토는 단순한 흙이라는 범주를 뛰어 넘어 주거와 식생활뿐 아니라 다양한 생활 제품으로 이용되고 있다. 전라북도 고창, 황토로 유명한 이곳은 지하 6미터 아래에 있는 입자가 작고 색이 짙은 황토를 채굴 하는 곳이다. 고창황토를 연구하시는 박영택 선생님께 우리 고유의 황토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인터뷰 박영택 /황토 명인 황토분말이나 건축자재를 만드는 황토의 채취장입니다. 산의 1미터정도 깎고 그 밑의 황토를 채취를 해서 황토를 가공해 황토제품을 제작합니다. 황토는 예로부터 조상들에게 꼭 필요한 삶의 일부였지만 현재는 황토를 일상생활에서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충남 /계족산 하지만 이곳 계족산에서는 현대인들이 황토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이다. 도심 속에 위치한 황톳길을 맨발로 걸으며 황토를 느끼고 상쾌한 기운도 얻어 갈 수 있는 곳이다. 최희주/ 신세대유치원 교사 저희 유치원의 슬로건이 자연생태 활동위주입니다. 자연 생태 활동 위주로 교육을 하다 보니 자연 황토가 건강에 도움이 많이 되고, 황토의 촉감놀이도 느낄 수 있으며 시멘트에서 사는 아이들보다는 자연에 어울러져 사는 아이들이 좋을 꺼 같아 오게 됐습니다. 흙과 우리 민족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흙을 어머니라고 부를 만큼 다양한 흙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이렇듯 황토의 유용성은 일시적인 유행이 아닌 우리 전통 흙 문화로 지키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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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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