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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
[문화PD] 문화피디 20기에 이어 21기까지 섭렵한 김규현피디를 만나다
문화피디 20기에 이은 21기까지 활동한 김규현피디의 활동 21기에는 어떤 활동을 하였나? 직접 발로뛰며 활동한 그의 활동은? 2024년의 김규현 피디의 계획은? [대본] 안녕하십니까? 숏터뷰의 지원동 피디입니다. 오늘은 김규현 피디님을 자리에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지난 문화피디 기에 이어 문화피디 기에 참여한 김규현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먼저 이번 문화피디 기에 참여하면서 인상적이었던 제작과정은 무엇이 있었을까요? 이번 문화피디 기 활동 중에는 지난번에 참여하지 못했던 작은 미술관 프로젝트를 참여할 수 있었는데 해당 촬영이 저에겐 굉장히 감명 깊은 촬영이었던 것 같아요. 여자친구가 인천 살아서 인천에 자주 놀러가곤 했는데 인천에 이렇게 멋진 곳이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네. 인천의 작은 미술관 프로젝트 저도 피디님의 영상으로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요.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시겠어요? 미술관 이름은 배달이 있다 스페이스 작은 미술관이었는데요. 약 년 전의 여인숙을 미술관으로 리모델링하여 미술품을 전시하는 공간이었어요. 년 전의 건물을 리모델링했더니 정말 대단하네요. 년이나 된 건물이었던 것에 한 번 놀라고 미술관이 굉장히 고유하고 예뻐서 좋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미술관 안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나무 냄새가 굉장히 좋았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놀러 갈 것 같아요. 네 저도 김규현 피디님의 영상 덕분에 작은 미술관 꼭 가보고 싶게 되었습니다. 그런 다음으로는 영상 제작하면서 가장 알리고 싶었던 신기술은 무엇이 있었을까요? 회차에 진행했던 가상현실 스포츠 센터가 생각나요. 어떤 점 때문일까요? 이곳은 비장애인과 장애인 모두 시설 이용이 가능하지만 주로 장애인분들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인데요. 양궁사격과 같이 실외에서 체험하기 힘든 활동들을 VR과 XR 등 다양한 디지털기기들로 체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공간이었어요. 안에서 체험하시던 분들의 얼굴이 굉장히 즐거워 보였는데 디지털 기술이 사람을 웃게 만들 수 있구나라는 걸 직접 체험해볼 수 있었던 활동이었던 것 같아요. 저도 김규현 피디님의 회차 영상을 보면서 굉장히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규현 피디님은 문화피디 기를 하면서 느낀 점은 또 무엇이 있었을까요? 문화피디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여러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것 같아요. 경인 지역에 위치한 여러 시설이나 장소에 들러 그곳의 관계자분들 그리고 이용하시는 시민분들을 촬영하며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저에게 가장 큰 장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문화 피디가 아닌 일반 영상 제작자라면 쉽게 하지 못할 일들을 문화 정보원의 이름을 통해 체험할 수 있었어요. 네 저도 개인촬영을 하면는 많은 분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는데 문화피디를 하면서 김규현 피디님과 똑같은 생각을 했었기 때문에 많이 공감이 됩니다. 네 김규현 피디님께서는 이번 문화 피디 활동을 통해 년에 혹시 계획하고 계신 활동이 있으신가요? 저는 영상을 제작하는 일을 하다 보니 년에도 꾸준히 영상을 제작할 예정이고요. 저희 문화 피디 활동을 도와주시는 여러 매니저님들에게 도움을 받고 있기 때문에 문화피디 기에도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청해보고 싶습니다. 김규현 피디님의 년도에도 문화피디 활동을 하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들어봤습니다. 이것으로 숏터뷰를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김규현 피디님 함께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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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
[문화PD] 문화PD가 전하는 문화PD의 이야기
챕터 1. 문화피디 소개 챕터 2. 문화피디 인터뷰 이번년도 문화PD 콘텐츠를 제작함에 있어 가장 인상 깊었던 촬영지 또는 콘텐츠를 소개해주세요. 문화PD 콘텐츠를 제작하면서 어려웠던 점 또는 촬영 속 비하인드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내년에 문화 활동을 하신다면 담고 싶은 콘텐츠 또는 촬영 컨셉이 있으신가요? [대본] 다양한 지역에서 디지털 문화 콘텐츠를 담는 문화PD 오늘은 디지털 문화를 소개하는 것이 아닌 이를 담는 문화 피디 분을 소개하려 하는데요 문화PD가 담은 베스트 촬영지부터 촬영하면서 느꼈던 여러 비하인드 스토리들 이번 편에서는 여러분들께 촬영 속 이야기들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저는 문화PD 기에서 최연소 PD로 활동하고 있는 홍준서입니다 제가 제작한 영상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콘텐츠는 돌담 시리즈라고 하는 총 삼편의 영상을 제작하고 있는데요 지금 현재 제작 중인 회차 영상이 가장 인상적입니다 이 회차 영상에는 제가 직접 돌담축제 현장을 찾아가서 그것을 촬영하기도 하고 현장을 촬영한 사진들로 온라인 전시회를 개최해서 주변의 사람들과 같이 공유하기도 하고 일본에서 돌챙이 활동을 하고 계신 분과 직접 온라인 화상 인터뷰까지 하면서 여러 가지 많은 내용들을 담은 영상이라서 가장 인상적인 그런 콘텐츠인 것 같습니다 돌담시리즈를 제작하게 된 것은 지역 간담회가 열렸을 때 한국문화정보원 관계자 분들 그리고 문화PD 기 운영을 담당하시는 분들과 함께 식사도 하고 여러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때 아이디어가 생각나서 이렇게 촬영을 하게 되었는데요 제주만의 특별한 문화 그런 것들을 담을 수가 있어가지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이제 내년에 만약 문화피디 활동을 하게 된다면 약간 좀 데이터 신기술 관련된 여러 장소 들이 많이 있지만 그런 장소들은 제주에는 한정적이다보니 좀더 제주의 문화와 관련된 뭔가 디지털로 전환하고 그런 것들을 좀 촬영 해보고 싶습니다 저에게 문화PD란 성장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처음 이 문화PD 활동을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 공문 협조 요청 이런 것들도 작성을 해야 되고 계획서도 작성해야 되고 혼자서 여러 가지 많은 것들을 하다 보니까 어려움도 많았고 첫 영상을 지금 돌아왔을 때는 많이 부족한 점들이 있는데요 그러나 점차 회차를 거듭하면서 이제 점점 영상 편집 실력 같은 것들 점점 영상 편집실력 같은 것들도 늘리고 여러 가지 영상을 기획하는 데 있어서도 많은 것들을 담을 수 있다 보니 문화 피디 활동이 저에게는 성장을 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문화피디 활동은 영상을 전문적으로 편집하지 않으시더라도 여러 가지 멘토들과의 피드백 이런 것들을 통해서 좀 더 많이 성장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기 때문에 영상에 관심 있고 이런 문화디지털 신기술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문화PD 기의 활동에도 지원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문화PD가 소개하는 문화PD 올해 디지털 콘텐츠 문화를 재해석하면서 겪었던 자기만의 에피소드들 그리고 촬영을 해서 느꼈 던 비하인드 스토리들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요 여러분들께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면서 기획부터 촬영 그리고 제작까지 다양한 과정을 거쳐 영상이라는 매체를 통해 정보를 전달드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문화피디 활동은 계속되니 여러분이 도문화 피디로 기대해주세요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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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3
[문화PD] 한국문화정보원 문화피디 21기 후기, 문지혜 PD 인터뷰
영상을 잘 만들고 싶다면 꼭 도전해봐야할 한국문화정보원 문화PD! 영상을 이제 막 시작해서 걱정이 된다구요? 그래도 괜찮아요. 좋은 영상을 만들고 싶은 마음만 있다면요. [대본] 이프랜드 관우PD님 오셨어요? 저를 인터뷰하러 오셨다 들었습니다! 문화PD가 얻그제 발대식을 한 것 같은데 벌써 마지막 영상 촬영 중이네요. 문화PD를 하면서 느낀 것들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이야기해보며 마무리해보려 합니다. Q. 지혜 피디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문화정보원 문화피디 21기 문지혜입니다. 저는 전통과 문화를 좋아하고, 파이널 컷만 좀 끄적여본 일반인이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문화피디라는 걸 알게 되었는데 처음엔 피디보다는 문화라는 단어를 보고 아 이건 내가 해야 하는 거다 하고 지원하게 된 계기가 되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쉽게 생각했던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원 내용에 보니 자기소개를 영상으로 올려야 한다고 하고, 온라인 면접도 보고.. 아, 까다롭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떨어질 줄 알았는데 붙었더라고요. 영상에 대해 잘 몰라도 할 수 있도록 매니저님들이 많이 도와주시고, 영상교육, 저작권 교육, 영상 기획에 대한 교육을 해주셨던 게 영상 경험이 없는 저에게는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Q. 저도 활동하면서 배워가는 것도 많다고 느꼈던 문화피디였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 문화피디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영상 제작 과정이 무엇인가요? 개인적으로는 처음 만든 영상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부여 정림사지 박물관에 있는 메타 망원경에 대한 영상이었습니다. 현재는 볼 수 없는 옛 건축물을 메타 망원경을 통해 보여주는 기술인데요. 문화피디로서 첫 영상이라 걱정이 많이 되었는데 전통과 문화에 대한 정보 전달 만큼은 자신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정성스럽게 영상으로 담아보자!라는 생각으로 하나하나 만들어갔습니다. 첫 달에 다행히 우수작으로 뽑혔는데 그걸로 자신감이 생기는 계기가 되었어요. 이후 3회차까지 전통문화와 연관된 주제로 영상을 만들었어요. 개인적으로 이 과정 중에 좋았던 점은 한국 문화 정보원의 문화피디라는 이름으로 박물관 학예사님이나 회사 대표님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는 거예요. 또, 그 내용을 영상에 넣음으로 더 좋은 영상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관우 님 왜 수염을 달았어요? 어 그렇네 수염이 있네 있는 줄 몰랐어요 잘 따라오고 계시나요? 열심히 따라오고 계시네 우와 예쁜데 찾았어요 저 춤추는거 샀어요 영상으로 잘 담아주세요 어 근데 저 아무것도 안하고 있으니까 되게 뻘쭘해보여요 박수라도 치셔야하는거 아니에요? 익숙하지 않아서 박수가..이건가 Q.지혜 피디님은 전통과 문화에 관심이 있어서 그런지 되게 독창적인 영상을 만들어 오셨던 것 같아요 그럼 지금까지 만든 영상 중 가장 소개하고 싶은 디지털 신기술은 무엇인가요? 4회차 때 약자 프렌들리를 이끄는 디지털 신기술이라는 주제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AI 기술에 대한 영상을 찍었습니다. 진짜 시각장애인분을 섭외해서 온라인 쇼핑 보조 어플을 체험해 보는 영상이었는데요. 코로나 시기에 과일이랑 신발조차도 온라인으로 사는 일이 많아졌잖아요. 하지만 시각장애인분들은 온라인으로 물건 하나를 사려고 하면 하루 이상이 걸리기도 해요. 그런데 이러한 문제점을 AI인공지능을 통해 많은 상품의 시각데이터를 텍스트로 읽은 다음에 챗GPT처럼 물어보는 질문에 맞게 상품을 추천해 주거든요. 영상을 찍기 위해 저도 사용해 보니 이런 기능이 시각장애인이 아니고 비장애인에게도 좋겠다 싶더라고요. 온라인으로 샴푸를 사고 싶은데 검색했을 때 상품이 너무 많으면 누가 좀 골라줬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 들지 않나요? 그럴 때 이 기술을 사용하면 너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약자들을 배려하는 기술이 약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구나!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이번 영상을 끝으로 문화 피디가 끝나잖아요 6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계속해 왔다가 이제 더 이상 할 수 없는 활동이 되었는데 마지막으로 지금 기분이 어떠세요? 매달 영상을 한 개씩 혼자 만들고 벌써 6개의 영상을 만들어 냈다는 게 스스로 대견하고요 하지만 이제 끝났으니 내년에는 어떤 활동을 해야할까하는 설렘과 걱정도 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내년에도 지원하고 싶어요. 같이 활동하는 문화 피디님들의 영상을 보면서 매 회차 동일한 주제로 하는데 와 어떻게 이런 소재를 찾았지? 어떻게 이렇게 콘텐츠를 풀어냈지? 하는 것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그런 영상들 속에서 회차가 끝나면 우수작을 뽑는데 거기에 뽑히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그래서 좋은 영상이란 어떤 걸까 생각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어서 무척 좋았습니다. 이런 기회를 만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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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
[문화PD] 마왕을 물리치기 위해 마법사 태준이 궁수 종욱이를 다시 만났다
이종욱님의 문화피디 21기로써의 활동 인터뷰 영상 입니다 [대본] [태훈과 인터뷰 후 시작] 태준: 태훈이 녀석 아직도 사극놀이에 진심이구만.. 안본사이 몸이 더 좋아졌어 전사들은 원래 저렇게 몸이 좋나 그럼 나도 이 세계 최고의 호크아이였던 종욱이를 만나러 가야겠어 이동 태준: 종욱이가 항상 이쯤에서 있었는데 종욱: 여어~ 태준: 종욱아 여전히 멀리서도 잘 보는구나 우리팀 궁수 실력 죽지않았네ㅎㅎ 종욱: 나야 뭐 백발백중이던 실력을 안녹슬게 하려고 매일같이 수련하고 있어 그런데 무슨일이야? 태준: 후훗 수련을 하고있었다면 잘됐네 마왕이 다시 나타나서 대현자님의 어명이 떨어졌어. 다시 뭉쳐서 물리치고 최고의 문화피디를 뽑는다고 하더라고! 종욱: 이거 재밌겠는걸? 조금 더 들려줘봐 태준: 좋아 그전에 미션을 해야하는데 바로 시작할게 우리 문화피디를 하면서 제일 재밌었던 에피소드가 있을까? 종욱: 흠.. 나는 최근에 새로운 웹드라마 형태로 국립중앙박물관 영상을 촬영했는데, 그게 가장 재밌었던 것 같아! 박물관 덕후인 남자 주인공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개팅을 하며, 여자 주인공도 박물관에 나오는 VR과 미디어 아트를 체험하며 박물관에 빠지게 되는 내용인데, 촬영을 하면서 너무 재밌더라고 그리고 친구 역할로 나도 출연해서 처음으로 발연기를 해보았지 태준: 오..그거 재밌었겠네ㅎㅎ 영상 기다래고 있을게 ㅎㅎ 그리고 너 영상을 보니까 항상 미모의 여성분이 나오던데 어떻게 하면 그렇게 주변에 미모의 여성분들이 항상 있는거야? 종욱: 그건 다 배우분을 섭외했기 때문이야 그래서 사실 나는 제작비를 다 투자해서 영상을 찍다보니 남는게 없더라고 ㅠㅠ 원래 영상 업계에서 일을 하면서 알게된 배우분들인데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처럼 나는 영상의 퀄리티에는 외모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미모의 여성분들을 섭외했지 결국 우리가 열심히 만들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보면 좋으니깐 그걸 생각하면서 만들게 됐어! 국립중앙박물관편에는 잘생긴 남자 배우도 나오니깐 기대해달라구!! 태준: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라... 맞는말이네 훗,,ㅎ 그럼 다음 잘생긴 남자 배우가 나오는 영상도 기대하겠어~! 이제 마지막으로 다음에 우리가 또 같이 모이게 된다면 문화피디에서 어떤 팀작업을 해보고싶어?? 종욱: 사실 이번 문화PD에 많은 참여를 하지 못했어, 원래 하던 영상일이 갑자기 일이 많아져서 참여를 하고 싶어서 참여를 못한 것들이 너무 많아 사실 나는 하고 싶은 컨텐츠가 굉장히 많은데, 우리 팀으로 하게 되면 나는 알쓸신잡 같이 한 지역에 여행을 가서 다양한 콘텐츠를 체험하고 나중에는 우리가 모여서 이야기하는 콘텐츠를 하는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 서로 각자의 시선으로 이야기 하고, 그 이야기에 대해서 토론하는게 항상 재미있더라고!!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꼭 해보고 싶다 ㅎㅎ 태준: 역시 최고의 호크아이 종욱이 너 답다..! 이제 우리 다시 동료로서 마왕을 물리치러가자~! 지금 선희, 태훈이도 기다리고있어 종욱: 그리운 이름들이네.. ㅎ 그럼 난 마지막으로 암흑속 수호자 영석이만 데러오면 되겠네 한번 가볼까~ (한쪽으로 나감)
관리자
조회수: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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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문화PD] 버터뷰 ep1 :: 나에게 문화PD란?
문화정보원에서 하는 문화PD란 도대체 뭘까? [대본] 1. 안녕하세요 본인의 외모를 10점 만점에.. 몇 # 대학교맵 안녕하세요~ 문화PD 이유빈이라고 합니다 점수는 대략 10점 정도 생각하고 있고, 현재 PD 지망 대학생입니다~ (발랄한 느낌과 ,카메라 아이콘) 까마귀.. (아-아 방금 질문은 죄송합니다. 문화PD 하시면서 힘든 순간이 어느때 였을까요? # 헬스장 V 솔직히 힘들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구요 정말 수우우우우~ 많은 고비 고비가 있었지만! 책임감 하나로 허들을 넘어냈던 것 같네요. (해당 녹음할 때 숨을 헐떡이면서 운동하는 느낌으로 문장 사이 사이 버퍼링 좀 부탁드립니다) (그러면 문화PD 영상을 만드실 때 행복 했을때는 언제였나요? 용산 나들이라는 영상을 만들고, PD님들께 악수 요청이 막 들어오고 # 컴퓨터실 V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을 때? # 스테이지 V 스스로한테 좀 박한 편이라 아직도 어리둥절하긴 한데, 많이들 좋아해 주셔서 신기하고, 뿌듯했습니다 (그러면 용산 영상을 제작할때 많이 힘드셨나요? # 남산타워 V 그럼요! 사실 만들면서 제일 힘들었던 영상이에요. 당시에 촬영 시간도 촉박했고, 인터뷰이를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거든요. # 거절씬 다행히 결과물이 좋은 평가를 들어서 보상받은 느낌이었어요 # 행복함 이모티콘 (문화PD 하면서 본인한테 도움된 점은 어떤걸까요? 역시 돈! 돈을 해결해주셨구요, # 부자맵 3기수에 걸쳐 쌓은 포트폴리오가 PD라는 꿈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앞으로 더 만들어보고 싶은 영상이나 콘텐츠는 어떤걸까요? 다른 PD님들의 영상을 보면서, 저도 좋은 장비를 이용해서 영화스러운 비쥬얼을 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라구요 지금보다 높은 퀄리티의 영상 콘텐츠를 만들어 보는 게 목표입니다 (마지막으로 차기 문화PD분들게 한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전쟁터 같은 경쟁과(강조) 그리고 자본이 필요하시다면 고민 말고 지원하세요!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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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100] 투박하고 소박하게, 막사발 이야기
투박성, 토속성, 실용성 등이 두루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사발.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16세기 일본에 건너간 이래, 국내보다 해외에서 각광받는 도자문화인 막사발에 대한 영상. 내레이션 일본 교토시 사쿄큐. 이곳에는 일본의 국보인 ‘이도차완’이 전시되어 있다. 이 이도차완은 16세기 조선에서 일본으로 넘어간 천여점의 막사발 중 남아있는 하나이다. 일본에서는 이 막사발을 ‘이도차완’이라는 이름으로 중요한 문화재로 지정해 놓고 있는 것이다. 조선도공이 만드는 막사발은 보물이 되어 일본인들이 도자기 전쟁이라 부르는 한일전쟁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데려간 조선도공들은 일본 도자기 산업의 중심이 되었다.막사발은 예로부터 밥그릇, 국그릇, 막걸리 사발 등 주로 서민들이 쓰던 수수한 생활그릇이었다. 대접과 같은 모양으로 벽면은 곧게 솟아 올라있고, 아가리는 넓게 바지라진 형태를 갖고 있다. 살이 두껍고 겉 표면이 부드럽지 않은 특징을 가지는 막사발은 우리 땅에서 채취된 황토로 빚어내어 밝은색의 장식이 없는 자연스러움이 담긴 사치스럽지 않은 그릇이다. 경남 하동군 새미골. 사기마을이라 불리는 이곳은 400여년 전 이름없는 도공들의 고향이었다. 현재는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막사발의 정신을 잇는 도예가들이 모여 살고 있는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막사발의 정신을 잇고 있는 장금정 선생을 만나보자. 우수한 우리의 도자문화 막사발. 그 수수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은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 한국인의 모습과 닮아있다. 앞으로도 우리의 우수한 막사발을 지키는 일이야 말로 한국인의 혼을 전 세계에 알리는 일일 것이다.
관리자
조회수: 28,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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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9
[한국문화100]소설가 이순원의 강릉단오제 이야기
1967년에 중요무형문화재 13호로 1967년에 중요무형문화재 13호로 등록된 강릉단오제는 우리민족 전통 민속축제의 원형성을 간직한 단오축제이다. 2005년 11월에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등록되며 전 세계의 인류가 보존해야할 축제로 부상한 강릉단오제를 체험해보고 축제가 전승되는 과정을 알아본다.강릉단오제는 우리민족 전통 민속축제의 원형성을 간직한 단오축제이다. 2005년 11월에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등록되며 전 세계의 인류가 보존해야할 축제로 부상한 강릉단오제를 체험해보고 축제가 전승되는 과정을 알아본다. ----------대본---------- 내레이션 뜬금없이 단오라니, 그건 이미 잊혀진 명절이 아닌가 여기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옛날엔 단오가 4대 명절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드물지요. 민족의 큰 명절인 설외에 대보름 한식 단오 추석 그렇게 네 명절을 크게 쇠었던 거지요. 볍씨가 못자리로 나가 싹이 나고 푸른 모로 자라 모내기를 할 때 온산에 짓게 물든 녹음처럼 단오가 다가왔던 겁니다. 어린 시절, 단오는 나에게 꿈이었습니다. 단오는 일 년에 딱 하루, 내가 태어난 대관령 아래의 산골마을을 벗어나 사람 많고 자동차 많은 강릉시내 구경을 할 수 있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손을 놓쳐 길이라도 잃을까봐 형제가 손을 꼭 잡고 다녀습니다. 그러면서 온갖 진기한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 난전과 그네뛰기, 농악놀이, 씨름대회, 곡마단 등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습니다. 인터뷰 조규돈 / 강릉단오제보존회장일제침략기 때의 탄압 속에서 한 해 (강릉단오제를)안 지냈더니 가뭄이 들었어요. 그러니 민심이 흉흉한 거야, 단오제 안 지냈다고. 그러니 일본군수가 할 수 없이 (강릉단오제를) 지내라고. 그래서 기우제를 지냈어요. 그런데 남대천변에서 기우제를 지내기도 전에 물에 떠내려갔어. 그 다음부터 일본군수도 막지 못했던 것이 단오제이고 내레이션 강릉단오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축제입니다. 옛날 고대 부족국가 시대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풍습에서 비롯된 단오는 신을 모시는 날이기도 합니다. 본래 김유신 장군이었던 대관령 산신과 범일국사였던 대관령국사성황신 그리고 정씨처녀였던 국사여성황신 이 세분의 신이 바로 강릉단오제의 주신입니다. 이 지역 사람들은 오늘날에도 이 세분의 신이 지역의 안녕을 지켜주고 질병을 막아주고 풍년이 들게 해준다고 믿고 있습니다. 인터뷰 황루시 관동대학교 인문학장김유신 장군은 삼국을 통일한 장군이고 범일국사는 고려 건국에 힘을 보탰던 승려거든요. 역사에서 승리한 분을 신으로 모시는 거죠. 그런가하면 여성황은 호랑이에 물려죽은 여자거든요.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다는 것은 가장 실패한 인생인거지요. 그런데 강릉단오제에서는 승리한 사람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처참하고 반복하면 안타까운 실패한 삶을 항상 기억한다는 것이죠. 내레이션 강릉 단오의 준비는 단오가 꼭 한 달 남은 음력 4월 5일에 관청과 백성이 함께 정성스럽게 쌀을 모아 단오신주를 빚는 일로부터 시작됩니다. 많은 사람들의 정성으로 모아진 쌀을 헌미봉정이라고 하는데 모아진 헌미로 단오제 기간 동안 중요한 제례에 쓰일 술도 만들고 또 떡도 만들어 나중에 단오제에 참가하는 시민들에게 그대로 돌려줍니다. 술은 열흘쯤 지나면 아주 잘 익습니다. 그러면 음력 4월 15일에 신주를 정성스럽게 차려들고 대관령으로 올라갑니다. 먼저 대관령 산신당에 가서 산신제를 올리고 다시 그 옆에 있는 국사성황사에 가서 성황님을 강릉으로 모셔가는 국사성황제를 올립니다. 이제부터가 중요합니다. 산신제와 국사성황제를 지낸 다음 신장부가 더 울창한 산속으로 들어가면 무당들이 그 뒤를 따라갑니다. 과연 어느 나무에 신이 내렸을까 이건 매년 음력 4월 15일에 대관령에 올라오는 모든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일입니다. 이 신목이 바로 단오기간 동안 대관령 국사성황신의 몸이 됩니다. 국사성황신의 혼이 깃든 신목을 앞세우고 정씨처녀의 위패가 있는 여성황사로 이동하는 것이 국사성황행차입니다. 나무에 몸을 빌려 강릉으로 내려온 국사성황신을 국사여성황신 곁에 모셔왔다가 단오가 지난다음 다시 대관령으로 모셔다 드리는 동안의 축제가 바로 강릉단오제입니다. 단오를 이틀 앞둔 음력 5월3일 국사여성황사에서는 강릉단오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영신제가 펼쳐집니다. 영신제는 국사성황신과 국사여성황신의 신위와 신목을 단오터에 마련된 단오제단으로 모셔가는 의례입니다. 영신제를 마치고 국사성황신과 국사여성황신의 신위와 신목은 영신행차라는 거리행차를 통해 단오제단에 모셔집니다. 영신행렬은 시민들과 만나게 되고 시민들과 하나로 어우러져 이동합니다. 단오의 아침은 시민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조전제로부터 시작됩니다. 조전제는 풍년과 태평의 기원을 담아 대관령 국사성황신과 국사여성황 두 신께 제사를 받드니 잘 보살펴 달라는 기원의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단오제 기간 동안 단오굿은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시도 쉬지 않고 계속됩니다. 대관령에서 모셔온 국사성황님과 국사여성황님께 우리 모두 잘되게 해달라고 비는 굿입니다. 사람들은 가족 잘되게 보살펴 달라고 무당에게 돈을 건네기도 하고 부정을 없애고 신에게 소원을 빌기 위하여 소원이 적힌 종이에 불을 붙여 하늘로 날려 보내는 소지를 올리기도 합니다. 그래도 단오를 제일 재미있게 보내는 방법은 단오장을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갖가지 진귀한 물건들이 펼쳐져 있는 난전을 구경합니다. 이런저런 물건을 파는 난전이 길 옆으로 자그마치 일 킬로미터나 길게 이어져 있습니다. 팔도 음식을 파는 음식 난전 역시 그만큼 길고 다양합니다. 또 단오 신주와 수리취떡을 놓아두고 단오에 이 동네를 찾아온 외지 사람들에게 이곳 음식을 맛보이기도 합니다. 창포물에 머리 감는 것을 체험할 수 있는 곳도 있습니다. 단오날 창포물에 머리를 감으면 머리에서 윤기가 나고 향긋한 냄새가 납니다. 여름만 되면 마귀가 돌림병을 퍼뜨린다고 믿었던 옛날 사람들이 여름이 시작되는 단옷날에 향긋한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몸과 마음이 깨끗해지길 바랬던 겁니다. 단오를 정리하는 송신제를 끝으로 강릉단오제는 막을 내립니다. 인터뷰 최명희 강릉시장강릉단오는 천년동안 우리 강릉시민과 함께 내려온 삶의 현장, 문화의 현장, 소통의 현장, 만남의 광장인 다른 지역에서 찾아볼 수는 없는 우리 시민들 손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축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릉 단오제가 얼마 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 중의 하나로 선정됐습니다. 그때 함께 신청 접수된, 단오명절의 유래와 기원의 원전이 되는 중국의 단오를 누르고 또 우리나라에서는 종묘제례악과 판소리에 이어 세 번째로 선정된 것이라고 합니다. 인터뷰 김귀배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강릉단오제는 전통문화의 전승통로이자 재창조의 장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유네스코 무형유산 등재 기준 중의 하나인 문화다양성과 창조성이 단오제에서 행해지는 의식이나 행사를 통해 잘 구현되고 있다고 심사위원들이 판단했습니다. 내레이션 그 시절 나는 우리가 사는 세상 모든 고장의 단오가 다 이런 줄 알았습니다. 자라면서 세계에서는 우리나라만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장만 이렇게 옛 풍습 그대로 단오를 지켜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무엇보다 강릉단오제는 신이 납니다. 하루 이틀의 축제가 아니라 한 달도 넘는 기간 동안의 축제입니다. 단오가 되면 백리 밖의 사람들까지 다 단오장에 모여듭니다. 왜 그런지 한번만 와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 그 축제의 장으로 여러분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설날에 세뱃돈을 주지 않던 어른들도 단오가 되면 집집마다 아이들에게 조금씩 용돈을 주었습니다. 형제가 함께 그 돈을 받아들고 시오리 산길을 걸어 강릉시내의 단오장을 찾아가던 일이 마치 어제의 일처럼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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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100]애환이 깃든 다듬이질
청아한 다듬이질소리는 우리 정서의 대표적 상징이었다. 그러나 그 독특한 가락의 오묘한 음악도 세월의 변화와 더불어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 우리의 잃어버린 소리를 다시금 기억하고 다듬이질 문화를 알아보자. *나레이션 달 밝은 가을 밤, 창호지 문 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청아한 소리. 또닥.. 또닥.. 옛사람들은 우리 어머니의 다듬이질 소리가 익숙하다 경쾌한 소리에 담겨있는 우리 다듬이질에 대하여 알아보자. 한국 고유의 문화 다듬이질. 다듬이질은 우리의 고유한 옷감 손질법으로 옷감의 구김살을 펴기 위하여 다듬잇돌에 옷감을 올려 방망이로 두드리는 것을 뜻한다. 옛 우리 여성들은 한나절 꼬박 시부모님 공양과 자식 뒷바라지를 하며 가사노동을 했다. 그렇게 하루를 마치고 밤이되면 우리 어머니들은 다듬이질을 하며 타향으로 떠난 남편을 기다렸다. 다듬이질운 대표적인 여성노동의 한 형태였으며 어머니들의 애환이 담겨 있다. 어릴 적 대청마루에 누워서 본 어머니의 다듬이질하는 모습은 이제 추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전라북도에 위치한 창포마을은 오래전부터 청아한 다듬이 소리가 울러 퍼지고 있는 곳이다. 세월의 변화와 더불어 다듬이질 문화는 사라졌지만 이곳 창포마을에서는 다듬이질 소리의 정겨움을 느낄 수 있다. 화음을 이루는 듯한 다듬이질 소리가 울려 퍼지며 다듬이연주단만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다듬이질 소리의 청랑한 선율을 통해 현대인들은 옛 추억의 향수를 느낄 수 있었다. 이렇듯 우리 선조들에게 다듬이질은 생활과 삶 그 자체였다. 현대문명이 발전하면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된 우리네 정서의 상징, 다듬이질. 다듬이질은 선조들의 생활문화였으며 옷감을 다듬는 것 뿐 아니라, 삶의 고단함을 풀어주는 우리 전통문화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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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100] 한국의 색동, 세계화를 꿈꾸다
한민족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해주는 색깔 색동의 의미와 현재 색동의색깔문화, 발전 가능성에 대해 알아보자. *나레이션 -한국의 색동 세계화를 꿈꾸다 전통 무늬가 재해석 되고 있다?! 다시 태어난 아름다운 스트라이프. 이 스트라이프는 전통미를 살려낸 현대의 색동이다. 한국의 색동에 대하여 알아보자. 색동은 전통복식문화의 하나로 색을 조합하여 구성한다. 색의 넓이가 같은 줄무늬 반복으로 색동저고리의 형태가 가장 많이 남아있다. 색동은 무지개처럼 여러 가지 색깔로 층을 지게 한 천을 의미한다. 명절과 같은 경사스러운 날 착용하며 화려함으로 즐거움 나타낸다. Q. 색동이란 A. 줄무늬가 계속 반복되어서 나오는 문양, 패턴을 색동이라고 부르죠. 색동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아프리카, 몽골 등 여러 나라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름과 의미를 찾을 순 없다. 한국의 색동. 색동은 철학을 담는다. 남쪽은 적색, 북쪽은 흑색, 동쪽은 청색, 서쪽은 백색, 중앙은 황색인 오방색을 기준으로 하여 흑색을 빼고도 다른 색을 추가하여 사용된다. 남은 헝겊을 재활용하면서 환경보호차원으로 활용하였고 음양오행설에 따라 액땜효력에 아이들 돌 복으로 입혔다. 삼국시대부터 현재까지 이용되며 철학이 담겨있다. 수산리귀부인벽화는 색동이 치마에서 먼저 시작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색동은 어린아이들의 돌복, 명절복, 전통 혼례복 등에 애용되며 특별한 날에만 접 할 수 있었다. 멀고도 어렵게 느껴지던 색동. 색동 만들기로 현대에 재해석 되는 색동에 대해 알아보자. 색동을 만들어보겠습니다. 1. 배색을 선택하고 원단을 풀을 먹입니다. 2. 4cm 간격으로 재단 후 원단을 가위로 잘라줍니다. 3. 겉과 겉을 마주보게 하고 다섯 가지 색깔로 이어줍니다. 4. 손바느질을 할 때는 잡아당기면서 팽팽하게 유지해줍니다. 5. 마지막으로 다림질을 해서 색동을 완성해줍니다. 현대사회에서는 색동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을까? 색동의 세계화를 꿈꾸는 분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보자. Q. 항공기에 색동을 사용하게 된 계기? A. 한국을 대표하는 항공사라는 걸 알리기 위해서 색동을 접목하게 되었습니다. 동양 난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곡선미를 느낄 수 있고요. 선과 선이 힘차게 뻗어 나가서 면을 만들며 아름다운 깊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Q. 승무복에 색동을 사용하게 된 계기? A. 한국의 항공사라는 것, 결국은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색감을 선택해야 할 것 같아서 색동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색동스카프가 포인트 모티브가 되어 있어요. 이 모자 끝 링에 색동이 들어갔어요. 외국인 승객뿐만 아니라 내국인 승객들도 유니폼이 아름답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시는데요. 색동과 전통문양을 상징한다고 전해드리면 놀라고 좋아하십니다. 색동파스텔 줄무늬, 한국적가치 접목한 게 통했다. 싱가포르 패션디자이너대회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고영지 디자이너에게 색동의 발전가능성을 들어보자 Q. 색동의 발전 가능성? A. 우리의 색동을 가지고 명품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브랜드에서 나오는 색동이라고 세계인들이 알 수 있는 색동작업이 필요합니다. 첫째, 우리나라역사가 깊고, 둘째, 우리가 많이 쓰는 고유 옷감이고 자랑거리이다. 김치가 음식 중에 최고라면 옷감 중엔 색동이 최고이다. 세계화 할 수 있다, 우리 디자이너들이 동참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삼국시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우리의 색동. 모두가 관심을 갖고, 세계로 나아가게 동참한다면 더 특별하고 의미 있는 색동의 미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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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100] 진돗개 진서의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진돗개는 다른 개와 달리 여러 가지 우수한 특성을 지니고 있는 우리나라 고유의 토종개이다. 민첩하고 슬기로우며 특히,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진돗개의 모습을 살펴보고 우수한 한국의 토종개 진돗개가 가진 특별함을 알아본다. 내래이션 단정하고 고운 발, 가지런한 치아, 쫑긋한 귀, 탐스러운 꼬리. 보시는 바와 같이 아름답고 우아한, 안녕하세요, 저는 진돗개 진서랍니다. 전주에서 살고 있어요. 진돗개여서 진, 서곡마을에서 태어나서 서, 진서에요. 오늘도 왠지 따분한 날이네요 흠~ 앗 주인님! 함께 밖으로 산책이나 합시다! 눈에 익은 뒤태가 여기도, 저기도, 아! 또 여기도. 눈이 마주치자 우렁찬 목소리로 백구도 황구도 인사하는 진돗개의 고향, 여기는 보배섬 진도입니다. 장난치는 녀석들도 길 건너의 녀석도 진도에는 다양한 종류의 진돗개들이 살고 있는데요. 여기 귀여운 강아지들의 모습도 보이네요. 저 진서의 고향도 이곳 진도라고 합니다. 진돗개는 진도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그 혈통과 야성을 순수하게 유지하면서 토착화된 우리나라 고유의 개라고 하는데요, 진돗개는 어떻게 진도에서 살게 되었을까요? 진도군은 진도개사업소를 운영하며 보다 체계적으로 진돗개를 보호하고 관리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진도개사업소는 진돗개 홍보관, 훈련장, 메디컬센터, 테마파크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진돗개연구와 혈통관리를 통해 진돗개 보존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진도와 함께해 온 진돗개, 그러고 보니 진돗개와 진도개 두 가지로 불리는 것 같은데 어떤 차이가 있는 건가요? 아, 그렇군요.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보호되어 온 진돗개는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유산으로 가치를 인정받아 1962년에 천연기념물 제 5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당연히 저 진서도 천연기념물이란 사실! 애견의 본고장 영국에서는 120년 전통의 유명한 명견대회 크러프츠가 진행 되는데요. 2013년 올해, 처음 출전한 진돗개가 수입 종 부문 예선 2위에 오르기도 했답니다. 해외에서도 진돗개는 인기가 많아요. 진도에서도 해마다 진돗개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진도개페스티벌이 열린다고 합니다. 함께 가볼까요? 친구들! 진서도 같이 가요! 이곳은 진돗개 페스티벌 최고의 인기 견! 멋진 진돗개 강토군의 묘기 시범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하나둘, 하나둘 우와, 강토군 정말 대단한데요? 진돗개 페스티벌에서는 진돗개 경주와 진돗개 묘기 등 다양한 이벤트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진돗개 진서와 함께 진돗개의 고향으로 떠나본 여행 어떠셨나요? 진돗개에 대해 많이 알게 되셨나요? 충성심이 뛰어나고 깨끗하며 용맹하고 대담한 여러분의 가족이자 문화유산인 진돗개. 앞으로도 진돗개 그리고 저 진서를 많이 사랑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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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0
[한국문화100] 자연을 활용한 생활의 길잡이 자격루와 앙부일구
시간은 자연히 흐르고, 우리 일상은 늘 반복되고 있죠.(일상 사무실의 시계, 뻐꾸기 시계, 큰 추가 달린 시계 등,)현대인들은 쉽게 현재 시간을 알 수 있는데요.(핸드폰, 컴퓨터, 자동차, 손목시계)우리 조상들은 시간을 어떻게 알았을까요?!조상들은 옛 부터 자연에서 쉽게 접하는 여러 현상들을 이용해 시간을 알았는데, 물과 모래의 흐르는 속도, 태양의 이동 관측을 통해 시간을 알 수 있었습니다.그 중 태양과 물을 이용해 만든 시계, 자격루와 앙부일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할까요?!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솥모양의 오목한 해시계라는 뜻의 앙부일구 둥근 하늘을 하루에 한 바퀴 도는 해의 움직임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는 시계입니다.앙부일구의 구조는 시반, 받침대, 영침 세 부분으로 나뉘고 영침은 시계 바늘에 해당하며 그림자 끝이 가리키는 것이 바로 시간 입니다.시반에는 시각선과 절기선이 나타내고, 그 중 세로줄이 시각 선, 가로줄이 절기선을 나타냅니다.눈금 하나는 15분의 간격을 나타내고 그림자가 가장 길 때는 동지, 중간일 때는 춘분, 추분, 가장 짧을 때는 하지를 나타냅니다.눈금 위에 각 시를 상징하는 십이지신의 동물을 그려 넣어 글을 모르는 백성들로 하여금 쉽게 시간을 알 수 있도록 디자인 된 시계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남다른데요.조선시대 말까지 가장 많이 만들어진 대표적인 해시계로써 당시 지금의 종로거리에 설치하여 지나다니는 백성들이 쉽게 현재 시간을 알 수 있는 공중시계였습니다.또 다른 자연의 흐름으로 시간을 측정했던 시계는 물시계입니다.물은 다루기도 쉽기 때문에 보다 정확한 시간을 측정하는데 응용되었는데요. 조선시대 물시계를 이용해 자동시보장치를 부착한 시계가 바로 자격루입니다.자격루는 스스로 울리는 물시계라는 뜻으로 해시계와 달리 날이 흐리거나 비가 와서 해가 뜨지 않는 날에도 시간을 알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또한 다른 시계와는 달리 시각이 매우 정확하여 조선시대의 국가표준시계로 사용되었는데요.시간을 측정하는 물시계와 측정된 시간을 종, 북, 징소리로 알려주는 시보장치로 이루어져 있고 시보장치에는 3개의 인형이 각각 종, 북, 징을 울려 낮과 밤의 시간을 알려주었습니다.일정 시간이 되어 인형이 종을 울리면 시보장치 안의 십이지신 가운데 해당 시에 해당하는 동물인형 쥐, 소, 호랑이 등이 등장해 시간을 한 눈에 알 수 있게 하였는데요.비록 명나라의 물시계보다 조금 늦게 만들어 졌지만 자격루는 그 규모가 크고 만듦새가 훌륭해 15세기 시간 측정사의 금자탑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조선시대에 시간 알림은 어떻게 활용 되었을까요?int 남문현 교수 - 조선시대 시계의 활용 인정과 파루제도 조선시대 인정 / 파루제도- 인정 : 해가져서 도성문을 닫을 때 28번 종을 치는 것- 파루 : 새벽 동틀 무렵 도성문을 열 때 33번 종을 치는 것통금과 해제 시간을 비롯해,백성들의 생활의 기본이 되었던 시간을 알려준 자격루와 앙부일구.단순히 중국의 문명을 이어 받아 개발한 발명품에 지나지 않고 백성들의 편의를 헤아린 왕의 배려가 담긴 생활의 길잡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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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100]희노애락이 담겨져있는 공동체문화 '두레'
노동과 친목을 도모하는 마을문화인 두레에 관한 역사적 배경, 과거의 두레문화 특징과 마을 공동체 문화 소개, 현재 계승되고 있는 두레문화에 대해 알아본다. 내래이션 농촌생활의 규율이자 공동체였던 두레는 오랜 풍습이다. 조상들은 힘을 합치는 것을 당연한 미풍양속으로 여겼는데, 품앗이, 향약, 계모임 등은 모두 협동생활방식이다. 마을주민들은 두레를 조직해 일을 하였다. 모내기, 물대기, 김매기, 벼 배기 등 농사 전 과정을 협업으로 이뤄냈다. 하지만 두레가 노동만은 아니었다. 친목도모로 풍물을 즐겼는데, 두레 굿패는 오늘날까지도 그 의식을 지키려 노력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두레문화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두레문화를 계승하기 위한 노력이 있어서 찾아가 봤다. 증평군의 작은 마을. 주민들이 모여 작업으로 분주하다. 이곳은 증평두레놀이보존회를 만들어 두레문화를 계승하고 있다. 주민들은 두레문화를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서로 돕고 웃으며 하는 작업은 일의 능률을 올린다. 개인보다 마을의 이익을 추구하고 돕는 두레문화를 보면서 훈훈한 인심을 느낀다. 서울시 상계동에도 두레문화를 계승하는 곳이 있다. 풍물농악 두레 굿을 계승하는 마들농요보존회이다. 농사 전 과정을 흥겨운 노랫가락으로 재현한다. 공연 속 두레가 선조들의 생활이었다는 것을 느낀다. 공동체 삶속에서 가치를 추구했던 두레. 각박한 사회 환경의 대안으로 이 우수한 전통을 되새겨보며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따듯한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함께 사는 공동체 의식, 그것이 바로 두레의 정신입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두레의 의미와 정신을 계승하는 것은 점점 더 개별화 되어가는 현대인에게도 함께 라는 치유의 효과를 전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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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100]농업의 번영을 위한 창조적 발명품, 측우기
조선시대 농업사회의 농사의 번영을 위한 조상들의 뛰어난 지혜와 과학적인 사고를 통해 만들어진 측우기에 대해 알아본다. 자막내용 : 과거 조선시대에 우리의 주된 산업은 농업이었다. 그 중 애민정신을 바탕으로 찬란한 민족문화를 꽃피웠던 세종시대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는 세종대왕의 신념과 철학으로 개발된 발명품 측우기 농업국가 조선시대에서 농사의 풍년은 백성들에게 큰 행복이었다. 백성들이 보다 효과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강우량을 측정하는 측우기 개발 전 세계적으로 우량계를 만들어 우량을 과학적으로 관측한 것은 측우기가 세계 처음이고 세종시대 측우기 발명이후 조선시대 말까지 강우량을 측정하는데 사용 되었다. 현재 측우기는 유실되거나 훼손되어 일제강점기 때 빼앗겼다가 일본으로부터 반환 받은 금영측우기(보물 제561호)만이 현재 기상청에 남아있다. 측우기 민본주의 세종시대에 선조들의 신념과 철학이 담긴 창조적 발명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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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100] 흙, 불, 사람의 조화, 천하제일 비색 고려청자
[100대 민족문화상징 선정 사유] -고려시대 만들어진한국의 대표적 자기 “고려비색은 하늘아래 가장 아름다운 빛으로 다른 곳에서는 따라하려 해도 도저히 할 수 없는 천하제일이다.” 비색은 자기 문화를 처음 꽃피운 중국에서 청자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특히 고려비색은 청자의 색이 맑고 투명해서 마치 은은한 비취 옥빛 같다고 칭송하며 고려청자에 따로 붙은 이름이다. 1000년 전, 고려 도공들은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할 가장 진귀한 보물을 만들어 냈다. 시대를 앞선 독보적 기술과 독창성, 그리고 최고의 하나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장인의 집념이 탄생시킨 걸작, 우리는 그것을 이 시대 최고의 명품이라고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우리 문화의 우수성과 독창성을 대표하는 고려청자. 12세기경 고려청자는 단순한 장식에서 벗어나 서정적 문양 표현과 함께 새로운 장식기법인 청자 상감으로 발전시키며 독창적인 조형의 꽃을 피웠다. 상감기법은 도자기나 금속 등의 표면에 무늬를 파고 그 안에 금과 은, 흙 등을 넣어 채우는 장식기법으로 세계 최초로 고려청자에 상감기법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향로나 정병과 같은 금속공예품에도 은입사 상감기법을 사용하는 등 뛰어난 기술을 발휘하며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고려청자는 말고 투명한 비색과 함께 유려한 선의 흐름, 생동감 넘치는 회화적인 문양을 특징으로 하고 있어 중국 청자와는 다른 독자적인 미의 세계를 이룬다. 이처럼 천년의 세월이 지나도 아름다운 고운 결과 푸른빛은 도공의 시간과 정성, 인내가 모두 하나로 통해야 얻어지는 험난한 과정의 결과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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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100] 자신과 나라의 역경을 극복한 성웅, 이순신
이순신의 일대기를 통해 그의 강인하고 자주적인 성품을 소개하고, 한산도 대첩에서 펼친 학익진의 전략을 분석함으로 그의 뛰어난 전략가로서의 면모를 살펴본다. 내레이션 세계전사에 유례없는 불패 신화를 이룩한 충무공 이순신은 정의, 창의, 책임완수, 희생정신의 표본이 되는 위인입니다. 어린시절의 이순신은 용감하고 통솔력이 뛰어나 마을 소년들에게 인기가 많은 대장이었고 강직한 성품의 그는 훗날 위기에서 나라를 구하는 성웅이 되었습니다. 28세에 처음 치룬 무예시험 중 말에서 떨어진 이순신은 왼쪽 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게 되는데 이를 바라보던 모든 사람들은 그가 죽었다 생각했지만 이순신은 한발로 일어나 옆에 있는 나무껍질을 벗겨 다리에 대고 걸어 나와 주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만큼 자립정신이 강한 이순신은 32세라는 뒤늦은 나이에 북방의 말단 수비장교로 관직생활을 시작하지만 그의 관직생활은 그리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강직한 성품의 이순신은 1591년 2월 유성룡의 추천으로 드디어 전라좌도 수군전도사로 임명되었고, 전라좌수사에 부임한 이순신은 왜군의 침략을 예견하고 군기 확립 ,군비 확충, 무기개발을 통해 수군의 전력 증강을 위하여 만반의 준비를 시작 하였습니다. 1592년 4월 13일 마침내 이순신이 우려했던 임진왜란이 발발했고 수십만 대군의 일본군은 전쟁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조선을 일시에 침략하게 됩니다. 임진왜란의 전세를 바꾸게 한 1592년 7월 8일의 한산도 해전은 세계 4대 해전으로 꼽힐 정도로 유명한 해전이었습니다. 당시 73척의 왜선이 정박해 있던 견내량은 지형이 복잡하고 좁아서 아군에게 불리한 장소였는데 이순신 장군은 이 점을 간파하고 적선을 한산도의 넓은 바다로 유인하여 무방비상태의 적을 학익진법으로 집중 공격함으로 대승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정의와 창의 책임완수, 희생정신을 몸소 실천하며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실천적인 나라사랑의 삶을 보여주었던 성웅 이순신 자신과 나라의 역경을 극복한 진정한 명장입니다. 학이 양 날개를 펴듯 적을 포위하는 학익진법은 한 곳에 포위된 적의 함대에 화력을 집중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위력은 대단하였습니다. 동서양의 해전 연구가들은 시대를 초월하여 이순신 장군의 뛰어난 해전술을 칭찬하고 연구하고 있으며 현대 해군의 주요 전술로 계승하고 있습니다. *100대민족문화상징 선정사유 : 세계 해전사에 빛날 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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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100] 천년의 약속이 흐르는 곳, 경주
내래이션 수많은 보물과 이야기, 유서 깊은 역사가 숨쉬고 있는 신라의 천년 고도, 경주. 통일신라 전성기, 경주는 백만 인구의 세계적인 대도시였다. ?세월이 흘러 현대화된 경주는 이제, 한국 사람이라면 여러 번 가보게 되는 문화와 관광의 도시가 되었다. 엄청난 크기의 고분들은 도시 가운데 있어도 빌딩을 압도하고, 스러지지 않는 역사의 공기는 천년을 흘러 도시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가족, 친구, 연인. 저마다 소중한 사람들과 추억을 쌓아가는 곳. 소나무 숲길과 어우러진 산책터를 걸으며 와도 와도 또 다른 감동을 느끼는 것은 이 곳이 퍼내도 퍼내도 끝이 없는 역사의 샘이기 때문이다. 경주에 놀러오면 빼놓을 수 없는 것 하나.? 바로 경주빵! 경주 어딜 가도 만날 수 있는 경주빵은 50여년 동안 전통을 이어온 명품 간식이다. 방부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단팥 앙금이 너무 달지 않아 아이들 간식은 물론 외국인에게 소개하기도 좋은 100점짜리 기념품. 경주에 오면 즉석에서 만들어진 갓 구운 빵을 한입 가득 넣어보는 것, 꼭 잊지 말자! 저마다 서로에게 바람과 기대를 안고서 경주로 발걸음한 많은 사람들. 호수와 궁이 조화로운 이곳, 안압지에서 아름다운 연못 주변을 거닐다 보면 저마다의 사연은 아름답게 꽃피어난다. 안압지는 왕이 잔치를 열거나 손님을 모셨던 장소로서? 물 위를 유영하는? 오리와 기러기 떼를 보고 조선시대의 선비들이 붙인 이름이다. 천년 전, 동북아 최고의 선진 문명국이었던 신라. 그 고고한 문화와 깊은 여유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밤과 낮. 두 번 가보아야할 곳이 또 있다. 바로 첨성대. 첨성대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써 신라인들은 천문 연구에 관심이 많아 일식을 29번이나 관찰했을 정도의 놀라운 기록을 남겼다. 또한 첨성대는 구조, 돌 하나에도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어 알면 알수록 신비로운 신라인들의 멋과 깊이를 느낄 수 있다. 산이면 산, 바다면 바다, 한두번 가서는 경주의 깊은 혼을 만났다고 할 수 없다. 사계절마다, 여행을 함께 했던 사람마다 매번 느낌이 다른 것은 천년을 번영했던 고대왕국의 향취가 경주 구석구석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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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100] 한국불교가 낳은 불멸의 성사, 원효.
내래이션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얼굴, 하나의 종교라기보다 우리 민족의 핏줄 속에 내재하는 정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 바로 불교다. 그러나 과거 불교는 철저한 수도 생활과 일생동안의 연구를 통해 권위적인 존경을 받았던 고승의 영역이었다. 여기에 누구나 믿을 수 있는 불교,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불교, 누구나 해탈할 수 있는 불교가 되어야 한다고 앞장섰던 사람이 있다. 산 밑으로 내려와 사람들과 함께하며, 쉬운 언어로 친근하게 다가가고자 했던 사람. 바로 원효 스님이다. 마음밖에 법이 없는데, 어찌 달리 구할 것이 있으랴. 그는 문밖에 나가지 않고도 능히 세계를 내다보며 인간 내면 속에 있는 마음의 본질을 꿰뚫어보았다. 자신을 한없이 낮추어 민중의 벗이 되고자 했던 스님, 원효. 그는 스님임에도 불구하고 거리낌없는 자유로운 삶을 살면서 전문적인 술어나 어려운 이론을 사용하기보다는 간단한 염불, 게송, 노래와 춤 등으로 민중들을 교화시켰다. 특히 ‘무애가’라는 노래를 지어 부르며 사람들에게 널리 퍼뜨렸고 가난한 사람, 천민, 부랑자, 거지, 어린 아이들까지 모두 허물없이 따랐다고 전해지는 것은 이렇듯, 직접 대중들과 쉽게 만날 수 있는 생활을 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원효 스님는 불교 뿐만 아니라 세계불교사 및 철학사상 일반에 있어서도 100여종 240여권의 저술을 남겼으며 이론과 실천을 모두 갖춘, 그 이름 이대로, 큰 새벽을 연 밝은 별이었다. 그의 저서들은 중국과 일본에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로 유명했다. 또한 현재까지도 열반대제, 원효 예술제, 원효학술대회 등의 대규모 행사를 통해 원효 스님의 위대한 행적을 기리고 있다. 원효의 가장 원효다운 점은 대중과 먼 거리에 있는 성스러운 스님이 아니라 항상 천한 중생들을 멀리하지 않고 심지어 노래하고 춤추며 술 취하기도 하며 대중과 함께 어울렸던 것. 민중 속에 민중불교의 첫 새벽을 열고자 했던 원효 큰 스님의 ‘걸림 없는 삶’을 따르며, 오늘도 세상 안에서, 진실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환한 대자유의 세상을 노래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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