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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문화PD가 제작한 쉽고 재미있는 문화영상을 즐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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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6
[문화PD] 보람찼던 문화PD, 온라인으로 만나봤습니다. (문화PD 김승현)
문화PD 활동 많이 궁금하시죠? 오늘은 한번 문화PD를 줌을 통해 만나봤습니다! 어떻게 한번 같이 보실까요? [대본] 안녕하세요 문화PD 김종진입니다 마지막 영상을 맞아서 활동을 마무리 하는 의미로 어떤 영상을 제작하는게 좋을지 생각을 많이 해봤는데요 어떤 것을 찍으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다른 문화PD 활동이 궁금하실 것 같아서 문화PD 인터뷰 코너를 한 번 마련해봤습니다 지금 저 쪽에서 PD님이 한 분 계시는데요 저랑 같이 전라2팀에 소속되어 있으신 김승현 문화PD님을 한번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와 문화PD를 지원하게 되신 이유 부탁드립니다 네, 안녕하세요. 빛솔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는 김승현이라고 합니다 주로 저는 영상제작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도중 문화PD를 지원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사실 문화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데요 저는 저의 개성되는 컨텐츠로 활용을 해서 접목을 시켜서 한번 만들어볼까 해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제작과정 중에서 와닿는 일은 무엇이 있으셨나요? 저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 대한 컨텐츠가 가장 와닿았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만 봤던 문화에 대한 컨텐츠가 아니라 각각의 중국이라든지 일본이라든지 또 세계의 중앙아시아 권역의 작품들을 보면은 아 이렇게 승화시켜서 기술로 접목시켜서 만들구나 하고도 느끼게 되었어요 한국에서만 봤던 문화콘텐츠가 아니라 아시아 각국의 콘텐츠를 볼 수가 있어서 되게 신선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소개하고 싶은 회차와 디지털 신기술이 있다면? 광주에서 국립광주과학관이라는 곳이 있는데요 거기에서는 우리가 늘 잊고 살았던 기술들을 보여주는 곳입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잊고살았던 것들을 한번 더 보게 되었고요 그리고 광주하면 빛의 도시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거기에 대한 빛과 과학을 접목을 시켜가지고 되게 신선한 콘텐츠로 지역을 알리고 기술에 의한 것들도 접목시켜서 알리니까 되게 신선하고 좋았던 것 같아요 문화PD를 하면서 느끼신 점이 있으신가요? 네 문화PD하면서 느낀점은 저는 개인적으로 어려움이 있었어요 왜냐하면 그 지역에서 생산된 콘텐츠를 살리는게 너무 어렵더라고요 근데 그런 어려움들을 각각의 지역에 있는 문화PD들과 함께 의논하고 또 담당 매니저님과 함께 의논해나가면서 해결해나가니까 점점 제가 성장해나가는 그런 시간들이었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문화PD를 지원하려는 분들에게 팁 한번만 주실 수 있나요? 문화PD를 지원하려는 분들께 TIP하나를 주자면요 자기 개성을 어필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매 회차마다 미션이 주어집니다 근데 그 미션을 어떻게 개성대로 표현해느냐가 참 중요한 관건이더라고요 그래서 남의 것을 보고 하면은 오히려 감점이 되고요 자기 개성대로 재밌게 살려내는 것에 대해서 어필을 하면은 좀 좋은 점수를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 이렇게 인터뷰를 한번 해봤는데요 어떻게 문화PD에 대해서 궁금하신 부분들 그리고 어떤 영상들 어떤 것들이 재밌는지 같이 보셨는데 혹시 궁금하신게 해결되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자 올해에는 저는 이번 영상이 마지막으로 찾아뵙는 것인데요 내년이나 내후년에 또 문화PD가 되어서 여러분들한테 또 좋은 정보를 소개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영상 찾아주셔서 감사하고요 다음번에 또 뵙겠습니다 이상 문화PD 김종진이었습니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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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2
[문화PD] 이제서야 듣는다! - 양지환 PD의 영상 제작 이야기
6개월, 반년 동안 쉬지 않고 달려왔다! 문화PD 21기가 끝나가는 때인 지금, 이제는 들어볼 수 있다! 문화PD 활동을 하면서 지환PD가 느낀 점과 그의 영상 제작 과정 이야기를 들어보자! [대본] 네 안녕하세요 문화피디 21기 양지환입니다 벌써 6회차예요 저희가 마지막 회차는 이렇게 은행나무 가을의 끝자락 이런 제주대학교에서 이렇게 마지막으로 인사를 드리는데요 그래서 영상을 제작하면서 이번엔 디지털 기술이 어떤 게 있었는지 그리고 전체적으로 마무리하는 영상 그리고 제가 촬영하면서 느꼈던 점들 그런 것들을 여러분들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문화PD 활동을 하면서 진짜 여러가지 정보들을 많이 얻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VR 기술이 있었구나 이런 다양한 테마관이 있었구나 그런 것들을 사실 잘 알지 못했는데 이번 문화피디 활동을 하면서 제가 여러 곳을 촬영도 하고 기획도 하고 이렇게 편집도 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교류도 하면서 좀 다양한 정보들을 얻어갔던 것 같습니다 한 달이란 기간이 생각보다 짧더라구요 이게 기획부터 촬영 그리고 편집을 해야되는데 이제 기획같은 경우에는 저희가 기획안을 먼저 보내고 그 다음에 기획안이 컨펌이 되면 그 다음에 이제 해당 업체나 해당 기관한테 이제 협조 공문을 요청을 드려가지고 저희가 촬영 할 수 있도록 협조 요청을 드리는데 그 기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렸고 특히 기관이나 업체들은 이게 생각보다 기간이 짧다고 다른 날에 촬영을 원하시거나 다음에 촬영 원하시거나 그런 경우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느꼈던 것 같아요 주제선정은 제가 주로 인스타그램 인스타그램에 이제 VR 체험 AR 체험 제주 다양한 재미들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AR부터 시작해서 AR 시스템이 있는데 거기에 플러스 미디어 아트까지 있다 이제 디지털 기술이 들어간 그런 테마관이 이런 곳이 또 있구나 그러면서 좀 많은 정보를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유튜브에서도 좀 많이 검색을 했었어요 제주도 VR 제주도AR 제주도 디지털 기술 이런 걸 검색을 많이 해 봤는데 아직까지는 제주도에는 그런 기사들이 좀 많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좀 아쉬웠던 아쉬웠던 기억이 많이 남습니다 저는 주로 소니 에프엑스쓰리 제가 주로했던, 작년 촬영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제가 리포터 활동을 하면서 실제로 그 장소에 가서 제가 촬영하고 그 다음에 나레이션도 녹이고 그 다음에 실제로 이렇게 체험하는 모습들도 좀 많이 담았어요 후반에는 그래서 그런 것들을 많이 담으면서 필요했던 게 짐벌 짐벌이랑 그리고 제가 또 이것을 스스로 촬영을 못 하니까 항상 같이 다니는 이제 동생 한 명 데려가고 같이 다니면서 촬영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가장 재미있었던 의자는 바로 1회차요 1차 때 제가 어떤 기술을 소개드렸냐? 그중에 제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바로 스캔 핸드폰으로 스캔을 통해서 내가 원하는 편집 방향대로 편집할 수 있고 또 그 안에서 드론처럼 이렇게 촬영할 수도 있고 그런 기법들을 담아가지고 직접 체험하고 소개해야 되는데 그 반응이 꽤 좋았어요 그리고 그 기술들을 아직도 저는 가끔씩 쓰고 있습니다 저는 아까 방금 전에 말씀드렸던 그 디지털 AI 기술 근데 이게 요즘 요즘 시대에 들어서 많은 AI가 많이 등장 했잖아요 그 중에서도 촬영 촬영 AI 관련해서 정보가 많이 없었는데 이런 식으로도 촬영할 수 있고 이런 식으로도 편집도 가능한 그런 AI 기술도 있구나 그런 것들을 많이 이제 정보들을 파악하게 되면서 지금도 많이 쓰고 있고 그 기술들이 되게 재미있었어요 저에게 문화피디란 경험이었습니다 경험 왜 경험이었냐? 이런 경험들을 많이 만들어가면서 제 실력도 많이 늘었고 그 다음에 정보도 많이 늘었고 그 다음에 주변에 아는 지인이나 그런 사람들도 많이 소통을 하게 되면서 저의 영상의 삶에 있어서 경험들을 많이 쌓았던 것 같습니다 그 안에서 제 경험치도 많이 늘어났고요 그래서 저는 제 문화 피디란? 경험이었다 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관리자
조회수: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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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
[문화PD] 올해 문화PD들의 소중한 만남, 그리고 이야기
한국정보문화원 문화PD로 활동하면서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신기술들을 소개한다. [대본] 1)자기소개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광주에서 영상제작회사를 다니고있는 문화피디 21기 광주전라팀 27살 공새결입니다. 아무래도 직업이 영상쪽이다 보니 요즘 가장 수요가많은 유튜브관련 촬영 편집일을 하고 있고 문화피디를 하면서 직무향상도 많은 도움이 되는거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저희누나를 통해서 문화pd를 알게 되었는데요 누나가해외문화피디로 활동을 하게되면서 추천을 받고 문화PD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면접을 많이 못봐서 떨어질줄 알았는데 다행이 붙어서 재밌게 촬영하면서 디지털관련 영상들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2)인상적이었던 장면의 제작과정이나 에피소드 아무래도 가장 힘들었던 회차인 1회차가 기억에 많이 남는데요 광주 디지털훈련센터라는 곳을 촬영하게 되었는데 광주 디지털훈련센터가 여러곳에 위치해 있다보니 여러군데를 돌아다니며 촬영하다보니까 진짜 입에서 단내가 나면서 촬영을 했던게 생각이납니다. 진짜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기억에 남아요~ 무튼 힘들게 촬영을 한 만큼 우수작으로 뽑히게 되어서 가장 애착이 가는 회차이지 않나 생각도 들고 디지털로부터 소외받 어르신들을 위한 센터다보니 촬영을하면서 할아버지, 할머니 생각도 많이나고 이런곳이 존재함에 감사함을 느끼며 촬영을 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리고 촬영 마지막에 한 어르신이 이런곳이 있어서 감사하다라는 말을 하실 때 마음이 찡한 인터뷰이기도 합니다. 3)1~5회차 영상중 가장 소개하고 싶은 디지털 신기술 개인적으로 2회차 영상이 많이 생각나는데 영상 컨셉자체가 박물관에서 운영되는 VR가상현실과 실제관람을 체험해보고 비교해보는 영상을 제작했는데 전부터 여기에 대한 호기심이있어서 기획을 하게 되었고 나름 기획안부터 만족스럽게 짜여졌고 또 제가 가장 관심있는 VR에 관해 영상을 찍다보니 2회차를 가장 소개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4) 문화PD 활동을 하면서 느낀 점 처음에 광주, 전라지역에 디지털 관련 촬영을 할곳이 있을까?? 될까?? 걱정을 많이했는데 기획안을 쓰면서 찾아보니까 정말 많은 곳에 디지털관련 센터들, 페스티벌이 진행되고 있다는 걸 느꼈고 많은 홍보가 필요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디지털신기술에 대해 많은 지식을 쌓게되고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매니저님들이 너무 고생하신거같아서 감사하고 전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마지막으로 매니저님께 편집본 너무 늦게 제출한거같아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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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8
[문화PD] 우리는 문화PD 21기 입니다! (문화PD 이의선)
한국문화정보원 문화 PD 21기 활동을 마무리하며 느낀 점,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나에게 문화PD란과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대본] 안녕하세요 저는 문화PD 전라 팀으로 활동하고 있는 영상 제작자 이의선 입니다 제가 문화PD 활동을 하면서 인상 깊었던 상황이 되게 많은데요 저는 그중에서도 회차가 가장 인상이 깊어요 회차 주제가 예술과 그 다음에 디지털 기술을 결합시켜 가지고 소개하는 그런 내용이었는데요 예술이라는 주제를 어떻게 풀어낼까 고민을 하다가 제가 예전의 어떤 미디어아트전시를 진행하거나 하면 어머니를 초대하곤 했었는데 어머니가 그때 저의 전시를 보고 아 나는 잘 모르겠다 이해가 안 된다 하셨던 게 생각이 나가지고 어떻게 하면 엄마에게 조금 더 예술을 가깝게 느낄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좀 하다가 어머니에게 친숙한 주제인 할머니가 떠오르게 되었어요 그래서 저도 디지털 관련된 디지털 신기술을 찾다 보니까 메타 휴먼이라는 기술이 있었고 그 메타휴먼으로 할머니를 직접 만들어서 어머니에게 보여들었을 때 그런 반응들이 어떨까 그리고 그런 과정 자체가 하나의 예술로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회차를 작업했고 다행히도 어머니가 너무 편하게 잘 출연을 해주셨고 또 많은 분들이 되게 좋게 봐주셔가지고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되었습니다 회차에서 회차 중에 가장 많은 디지털기술을 하다보니까 다 하나 하나 기억에 남는데 그 중에서도 회 첫 더 진행했던 메타 패션이라는 개념이 있어요 메타패션은 어떤 앱 을 통해서 본인이 이제 본인의 아바타를 생성하고 그 아바타를 통해서 코디를 직접 해보는 그런 기술이거든요 그래서 직접 옷을 입어보지 않고도 이런 룩이 이렇게 어울리겠다 이렇게 알 수 있고 나아가서는 그 앱 자체에서 직접 구매까지 할 수 있는 그런 기술인데요 관광이라는 주제로 회차를 풀어냈어야 되는데 양한 많은 분들이 관광지를 직접 가시거나 관광지에 있는 기술을 소개하는 쪽으로 영상을 많이 풀다 보니까 저는 조금 어떻게 다르게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메타패션이라는 주제를 잡고 그 앱을 조사를 해서 이제 제가 알고 있는 패션에 관심이 많은 지인분을 섭외해서 메타패션을 풀어내봤는데요 그 때 촬영에 여름이었는데 그 실제로 코디를 입어보지 않고 앱을 통해서 하고 그 과정을 제가 직접 참여하다 보니까 괜찮은 기술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메타패션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제가 문화PD 활동을 하면서 느낀 점은 우선은 저도 지역에서 어디 영상팀에 소속돼서 일을 하거나 혼자 일을 하고 있다 보니까 주변에 다양한 영상 제작자분들을 만날 일이 생각보다 많이 없었어요 근데 문화피디 활동을 하면서 거의 피디분들을 한꺼번에 알게 되었고 그리고 그분들의 작업물을 공유하면서 아 이런 주제를 이렇게 풀어 내셨구나 이곳에 가서 이런식으로 영상 제작을 하셨구나를 느끼면서 되게 많은 교류가 되었고 그 다음에 제가 직접 제작한 영상을 이제 멘토분들이 피드백을 해주시고 매니저 분들이 많이 도와주시고 하다보니까 회차에 비해서 점점점 좋아지는 것을 저도 스스로 느낄 수 있을 만큼 성장하는 게 느껴 가지고 너무 좋았습니다 저에게 문화PD란 루틴이라고 설명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문화PD가 한 달을 주기로 한편에 영상을 만들어야 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첫 주에는 주제를 잡고 기획안을 쓰고 기획안을 수정하고 촬영을 하고 편집을 하고 이런 과정들이 어떻게 보면 좀 타이트하게 잡혀 있어요 근데 그런 마감들이 오히려 저에게 루틴을 자리잡게 해줘 가지고 지금 돌이켜보면 하나의 습관이 되었고 그 힘이 다른 영상 제작을 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되어가지고 저에게 문화PD란 루틴이라고 생각합니다 내년에 아마 별 문제가 없다면 기를 모집을 하실 텐데 저는 주변에 너무 추천을 하고 싶은 프로그램이고 만약에 이 영상을 보시는 분들이 이 기를 고민하고 계시다면 저는 지원을 해서 참여해 보시는 것을 적극 추천드립니다. 제가 이렇게 답변하는 거, 어떠신가요? 다른 질문 있으신가요?
관리자
조회수: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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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문화PD] 근대골목에서 문화피디를 만나다 (EP. 1 청라언덕)
안녕하세요 문화PD 21기 우정만입니다. 이곳은 푸를 청, 담쟁이 라, 청라언덕입니다. 근현대사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선교사들이 생활했던 주택 등 근대 건축물의 밀집 지역입니다. 최근에는 뉴진스 뮤직비디오 현장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문화PD로 활동하면서 느꼈던 점은 아 나도 어떻게 보면 이런 부분에 대해서 더 많은 생각을 열어야 하고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느꼈습니다. [대본] 문화 PD 21기 김성은입니다 이 근대 골목은 대구의 골목을 걸으면서 살아있는 역사를 체험하는 곳인데요 근대 골목에서 진행되는 릴레이 인터뷰 저 김성은 PD가 먼저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문화pd 21기 우정만입니다 이곳은 푸를청 담쟁이라 청라언덕입니다 근현대사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선교사들이 생활했던 주택 등 근대 건축물의 밀집 지역입니다 최근에는 뉴진스 뮤직비디오 현장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웨어러블 로봇을 촬영 갔던 적이 있는데 그때가 가장 좀 기억에 남았던 같습니다 이유는 사실 저는 로봇에 대해서 그렇게 관심이 있다거나 아직까지 우리 일상생활에서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고 생각을 했는데요 로봇들이 환자분들의 치료에 도움이 되는 장면들을 확인을 하면서 이게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분야에서도 되게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생각을 조금 달리 하게 되어서 저는 그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저는 대구의 신기술 중에서 추천드리고 싶은 것은 대구박물관의 디지털 아트존을 적극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저는 전시 자체가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이 좋아할 것 같다라고 저도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디지털 아트존에 입장을 하고 제가 촬영하는 순간 저도 촬영을 온 것을 이제 본분을 망각하고 되게 즐기고 감상하고 감탄만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대구의 신기술을 이제 확인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문화pd로 활동하면서 느꼈던 점은 아 나도 어떻게 보면 이런 부분에 대해서 더 많은 생각을 열어야 하고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느꼈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우정만 PD님 정말 감사합니다 근대 골목에서 진행되는 릴레이 인터뷰 이제는 다음 PD님을 찾아서 우정만 PD님께서 취재하러 떠나시면 되는데요 그럼 이만 인터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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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문화PD] 천년의 세월을 지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 나무
[대본]나레이션: 다들 충청도에서 오래된 것들 찾아보셨나요?나레이션: 서점을 보니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옛날부터 저는 책을 좋아했습니다. 책이 왜 좋았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나마 생각나는 게 있다면 책에서 나는 향기가 참 좋았어요.종이에서 느껴지는 나무의 냄새, 그게 지금도 떠오릅니다.저는 충청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를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레이션: 산수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지역 금산,이곳에는 천년고찰로 유명한 보석사가 있습니다.보석사는 신라시절 조구대사가 창건한 절로 초입에 자리한 전나무 숲이 매력적인 곳입니다.이곳 대웅전은 충남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어요.경내를 돌아 옆 문으로 나오니 이곳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은행나무가 보였습니다.나레이션: 나무는 무언가를 기념하듯 다양한 글씨와 색깔로 치장되어 있었습니다.현장음: 나무를 잘 모르는 제가 봐도 진짜 범상치 않은 나무라는 게 보자마자 딱 느껴집니다.인터뷰: 보석사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 365호로 지정이 되있고 높이 40m 둘레 10여 m로 1200여 년의 수령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신라 헌강왕 12년, 886년에 조구대사와 다섯 제자가 여섯 그루의 은행나무를 심게 됩니다. 그 은행나무가 세월이 흘러가면서 하나로 뭉쳐져서 자라온 것이 지금의 은행나무가 되어 있습니다.은행나무에는 신묘한 힘이 있어 1592년 임진왜란과 1950년 625 또 큰 가뭄이 걸렸을 때 울었다는 그런 전설이 있습니다나레이션: 10월 말 이곳에서는 보석사 은행나무 목신제가 열린다고 합니다. 다가올 목신제를 앞두고 사람들의 소원을 나무에 거는 이벤트를 하고 있었어요.위기를 알리고 사람들의 소원을 잇는 나무, 나무와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이어져 있었습니다.1000년의 세월을 지닌 이 나무는 놀랍게도 충남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가 아니었습니다.현장음: 저는 원래 금산에 있는 보석사 은행나무가 오래된 은행나무인 줄 알고 그걸 찾아가고 있었는데 금산문화원장님께서 요광리 은행나무라고 훨씬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지금 그 은행나무를 찾아가고 있습니다.아 이거구나 와~와 진짜 크다인터뷰: 요광리 은행나무는 추부면의 마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국 최고의 오래된 은행나무로써 유서가 깊은 나무입니다.높이가 24m 둘레가 13m 또 나이는 1400년 이상 추정이 되고, 나무 중간 부분은 수십 년 전에 벼락으로 잘라졌고 지금 둥치에서 나온 가지들이 원목을 이루고서 크고 있습니다.현장음: 와~ 한 지역에 이런 나무가 또 있다니?나레이션: 1400년 가까운 수명으로 추정되는 요광리 은행나무, 이곳에 사는 마을 사람들은 요광리 은행나무를 영험한 나무로 여기고 있었습니다.매년 10월이면 요광리 은행나무 목신제가 열립니다.나무를 둘러싼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천년의 세월을 기리는 시간을 갖는다고 하네요.사람보다 훨씬 긴 수명을 가진 나무는 그렇게 우리와 함께 살아갑니다.나무의 수명은 어떻게 결정될까요?수분, 토양, 주변 환경 등 다양한 요인이 있지만 은행나무는 천 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살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나무의 냄새를 따라 찾아온 금산,이곳에서 저는 알지 못했던 나무의 시간을 알게 되었습니다.새로운 것들로 가득 차고 변화하는 세상 속, 나무의 시간은 늘 우리 곁에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입니다.
임재운
조회수: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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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PD] 1490년에 쓰인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한글 편지
[대본]더빙-창윤)여러분. 저희 이번 영상 주제는 뭘로 하면 좋을까요?더빙-정은)그동안 디지털 신기술에 대해 했으니 이번엔 아날로그 어때요?더빙-재운)사실 충청도에는 가치 있는 오래된 것들이 많죠.더빙-예나)오. 그럼 그걸 주제로 해볼까요?더빙-동익)재밌겠는데요?! 찬성합니다!!!나레이션)충청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을 찾기 위해 고민하던 저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글 편지가 이곳, 대전 시립 박물관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직접 보기 위해 찾아왔습니다.박물관 가장 깊은 곳에서 그 모습을 직접 만나 볼 수 있었는데요.빛바랜 편지 위에 빼곡히 적힌 한글 고어가 인상적이었지만,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려웠습니다.다행히 QR코드를 통해 현대식으로 번역된 한글 편지의 내용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함께 들어보실까요?더빙-나신걸)안부를 끝이 없이 수없이 하네. 집에 가서 어머님이랑 아기랑 다 반가이 보고자 하다가, 장수가 혼자 가시며 날 못 가게 하시니, 못 다녀가네. 이런 민망하고 서러운 일이 어디에 있을꼬? 울고 가네. 어머님과 아기 모시고 잘 계시오.나레이션)수백 년 전 아내에게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서러움과 그리움을 이야기하는 편지라니.요즘 이야기로 치면, 회사의 지침으로 강원도 발령 가면서 아내와 함께하지 못한 것을 슬퍼하며 푸념하는 직장인의 카톡 메시지인 걸까요?해당 유물에 대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여쭤보겠습니다.인터뷰 음성)안정 나씨의 한글 편지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금고동 안정 나씨 묘역에서 출토된 한글 편지입니다. 안정 나씨 나신걸이 부인인 신창맹씨에게 보낸 편지입니다.나레이션)해당 유물의 문화재적 가치는 무엇인가요?인터뷰 음성)1443년 세종대왕 때 한글이 창제되고 반포된 것은 1446년인데요.그리고 한 오십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 회덕 지방 지금의 대전광역시까지 한글이 널리 전파되고 사용되고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라고 생각이 됩니다.나레이션)한글 편지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재밌는 요소가 있다는데요.인터뷰 음성)처음에는 바르게 우리가 편지 쓰는 식으로 적다가 나중에는 위쪽에 적다가 아래쪽에 적다가 아니면 거꾸로 뒤집어서 빈 공간에 쓴다든지 하면서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나레이션)안정 나씨 묘에서 출토된 다른 유물은 어떤 것이 있나요?인터뷰 음성)명기나 복식과 같은 14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명기는 죽은 사람이 내세에서도 현세와 같이 편안히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우리가 쓰는 일상 용기를 자그만 형태로 만들어서 같이 껴묻거리로 매장한 것이고요. 같이 출제된 복식 중에 치마나 바지라든지 철릭 같은 것은 당대 복식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나레이션)가장 오래된 무언가를 상상할 때, 저는 막연히 그것이 나와는 아주 먼 것, 아주 다른 것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대전 유성구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한글 편지 속 가족에 대한 사랑, 그리움, 만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속상함 같은 것은 지금의 우리가 느끼는 그것과 다른 바 없었습니다.500여 년 전 한글 편지가 우리에게 전하는 가치는, 수백 년을 지나도 변치 않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요?더빙-예나)여기까지 저의 주제 가장 오래된 한글 편지였습니다!더빙-동익)와. 충청도에 저런 것이 있었군요.더빙-정은)500여 년 전 가족의 사랑이 담긴 편지라니 감동적이에요!더빙-재운)다음 주제도 정말 기대되네요. ㅎㅎ
이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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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PD] 제주 민간설화 설문대할망 -죽음편
[대본] 앞에서는 설문대 할망의 탄생에 대해서 알아봤는데 요 설화라는게 탄생이 있다면? 죽음도 있는거겠죠? 지금 저는 그래서 설문대 할망의 죽음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 이곳 돌문화공원에 나와있습니다 제주 돌문화공원 위치 : 제주시 조천읍 남조로 2023 교래자연휴양림 운영시간 : 09:00~18:00 (월요일 휴무) 연락처 : 064-710-7733 주소 : http://www.jeju.go.kr/jejustonepark/index.htm 사람들이 제주도하면 원래부터 우리나라 영토였던줄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게 어떻게보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입니다 제주도 같은 경우에는 12세기 조선시대때 우리나라 영토에 편입이 된거에요 그래서 하나의 독립된 나라로 있었었는데 흔히들 들어보셨을거에요 탐라국이라고 하죠 탐라국 그게 원래는 독립된 섬나라였었던게 바로 이 제주도였습니다 그래서 설문대할망 같은 재밌는 건국신화도 있는거죠 하지만 모든 이야기에는 시작과 끝이 존재하는데요 오늘 제가 여러분께 소개해드릴 내용은 설문대할망의 결말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설문대할망과 돌문화공원에 대해서 자세하게 소개해주실 분을 한 분 모셔봤는데요 저는 돌문화공원 안에 있는 설문대할망 전시관이랑 오백장군 갤러리, 그리고 야외전시물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부탁드려요 돌문화공원은 곶자왈에 있는 공원인데요 돌을 소재로해서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 전설을 테마로 조성된 공원입니다 보시다시피 건물도 되게 낮은데요 자연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도록 높이도 최대한 낮추고 자연스럽게 배치하도록 의도된 공원이기도 하구요 제주도 형성과정을 볼 수 있는 돌박물관과 여러가지 예술 작품을 볼 수 있는 오백장군 갤러리 제주 돌문화를 전반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2코스, 3코스도 마련되어있습니다 지금 얘기들어보니까 설문대할망이랑도 관련이 많이 있는거 같은데 돌문화공원이랑 설문대할망은 어떤 관계가 있는걸까요? 돌문화공원 자체가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을 테마로해서 만들어진 공원인데요 이곳에는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 전설과 관련된 여러가지 장소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조금 슬프지만 설문대할망의 죽음과 관련된 장소들을 한번 둘러 보면 좋지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면 이럴게 아니고 나가서 한번 얘기를 들어볼 수 있도록 할까요? 설문대할망의 죽음과 관련된 두 가지 전설중 첫번째인 물장오리 관련 전설입니다 물장오리는 한라산에 있는 연못인데요 설문대할망은 자신의 큰 키를 실험하고자 제주도 곳곳을 돌아다녔는데요, 처음 용연에 갔을때는 본인의 발등에만 (물이) 닿았고 홍리물에서는 무릎에 닿았는데요 한껏 기고만장해진 설문대 할망은 한라산 물장오리로 가게 되었는데요 물장오리 바닥 없음 주의! 이곳이 밑이 없는 연못인지도 모르고 (물에) 들어간 설문대 할망은 영영 나올 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설문대할망의 죽음과 관련된 전설중 첫번째 입니다 설문대할망이 빠져 죽었다고 하는 죽솥을 형상화한 연못입니다 설문대할망은 오백장군을 낳아서 같이 생활하고 있었는데요 워낙 가족이 많다보니 가난한 삶을 살았고 가뜩이나 흉년이 겹치는 바람에 설문대할망이 자식들에게 사냥을 해서 양식을 구해오라하고 본인은 죽솥에서 자식들을 먹일 죽을 끓이게 되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설문대할망은 죽솥에 빠져 죽게 되었구요 그 사실을 모르는 오백장군은 돌아와서 죽을... 맛있게 먹게 되었는데 맛있게 죽을 먹다가 막내가 뼈다귀를 발견하게 됩니다 뼈다귀가 어머니의 뼈임을 직감한 막내는 슬퍼하면서 차귀도로 달려가게 되었는데요 그 안에서 울며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고 그리고 나머지 형들도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하다가 역시 바위가 되어버렸는데 지금의 오백기암이 바로 그 흔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했다시피 설문대할망이 빠져 죽었다고 한 죽솥이구요 그 주변을 오백장군을 형상화한 석상들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실제 오백장군이 돌이 되었다는 기암들은 한라산 영실에서 보실 수가 있구요 지금 이 돌들은 그 기암들을 석상으로 형상화한 것입니다 돌문화공원 내에 산재되어있는 형상물들을 보면 설문대할망의 모성애와 어머니를 잃은 자식들의 슬픔을 보실 수가 있습니다 나머지 설명은 문화PD님께서 전달해 주시겠습니다 이렇게 설문대할망과 제주돌문화공원에 대해서 알아보게 됐는데요 저는 여행지에 대한 설화나 역사에 얽힌 이야기들을 알게되면은 그곳이(여행지가) 조금 더 다르게 보이게 되는 경향이 생기더라구요 이렇게 바람이 많이 부는 제주도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돌도 많이 있으니까 제주돌문화공원에 방문 하셔서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 관람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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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PD] 제주 민간설화 설문대할망 -탄생편
[대본]안녕하세요문화PD 양지환 입니다저희가 오늘은 산방산에 찾아 왔는데요산방산은 서남쪽에 위치한 아주 예쁜 절벽을 이루는 산이에요여기는 오름은 아니고 약간 절벽처럼 이렇게 이루어져 있어 가지고설화가 있는데 그 설화와 산방굴사아름다운 전경과 함께 전해 드리려고 합니다함께 가시죠저희가 이제 산방산에 도착을 했습니다산방산 안내도는 여기 앞에 있는데요함께 가보시죠여기 현 위치에 있는보니까 좀 경로가 좀 많아요절 들이 되게 많고맨 끝에 산방굴사가 있는 것 같아요저희는 쭉 올라가서 산방굴사까지 가보도록 할게요근데 굉장히 계단이 많아요한번 보여주시죠처음에 산방산에 들어오면 이렇게 보문사라고 있는데이쪽으로 올라가면 산방굴사가 나온다는데요산방굴사는 선녀와 관련된 설화가 있는데요저희가 한번 올라가서 그쪽 산방굴사를 찍으면서그 설화에 관한 이야기를 해드릴께요사실 이런 거대한 산방산에는 재미있는 설화가 있는데요바로 설문대할망이 산방산을 만든 이야기예요옛날 제주도에는 아주 키가 큰 설문대할망이라는 할머니가 살고 있었는데요할머니는 키가 너무 커서 한라산을 베개 삼고누우면 발이 바다에 풍덩 빠질 정도였대요할머니가 어떤 일로 굉장히 화가 나서한라산 꼭대기를 손으로 퍼다가 휙 하고 던졌는데그것이 제주도 끝자락에 떨어져 산방산이 되었다고 해요산방산이 백록담 뚜껑인 거죠지름을 재보니 백록담과 산방산이딱 맞아떨어진다는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도 있습니다네 안녕하세요저희가 두 번째로 온 이 장소는 바로 알뜨르 비행장이라는 곳입니다저희가 원래는 용머리 해안을 가려고 했으나그쪽이 지금 만조상태라서가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통제가 됐어요그래서 지금 여기 보이시는 알뜨르 비행장에 저희가 도착을 했습니다여기 알뜨르 비행장은이렇게 지금 옛날 다크 투어리즘이라고 하죠제주도의 아픈 역사들그런 역사들이 담긴 곳이에요다크 투어리즘이란 일제강점기시대 때제주도민이 강제로 노동을 착취당하면서여기 전체를 비행장으로 썼는데 그런 곳에 시설을 직접 만들고그런데 좀 인력이 많이 쓰였다고 합니다자세한 정보는 제가 나중에 텍스트로 남겨드릴게요여기가 바로 알뜨르 비행장격납고입니다이곳은 아까 말했던 그 비행장비행장을 만들면서 그 비행기에옛날 그 비행기 잔해가 이렇게 남겨져 있는데추모를 하는 곳인 것 같아요천들이 같이이렇게 추모를 하는 것 같습니다제주도민들이 그 일제시대에 당시에이렇게 강제적으로 노동을 착취당하면서지금 이곳만 있는 게 아니고곳곳에 되게 많은데어떤 데가 허물어진 곳도 있어가지고 이게 제일 대표적으로 이렇게 있고학생들이나 어린 친구들도 이렇게 쉽게 볼 수 있도록내용들이 담겨져 있으니까요설문대할망탄생 그리고 산방산의 설화그리고 그 근처의 가볼 만한 곳 중 하나 인알뜨르 비행장에 다크 투어리즘까지이렇게 총 두 곳을 저희가 살펴보았는데요산방산의 전경과 그런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그 속에 있는 설화까지정말 매력적인 그런 곳이 아닌가 싶습니다그리고 주변에 이렇게 알뜨르 비행장이라고 있는데이것도 다크투어리즘으로써 제주도의 아픈 역사함께 같이 보면서 느낄 수 있기 때문에관광객 여러분께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저는 지금까지 설문대할망의 탄생그리고 산방산의 설화 이야기를 전해 드렸고요2부에서는 설문대할망의 죽음에 관하여서 이야기를 전해드릴게요감사합니다
양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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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54
[문화PD] 이성계가 사랑한 절에서 만난 보물 삼총사 [경기도 구석구석 보물찾기] EP.4 양주 편
[대본]0. 인트로네 안녕하십니까?여기는 양주 회암사지 앞에 있고요저는 문화PD 김경재 PD라고 합니다!오늘 여기 양주 회암사지에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하는데요?바로 어마무시한 우리나라 보물들이 숨겨져 있다고 합니다!오늘 저와 한번 같이 떠나보실까요?1. 양주 회암사지 설명회암사지는 고려 충숙왕 때 인도의 승려 지공이 처음 지었다는 회암사가 있던 자리입니다.조선 전기까지도 전국에서 가장 큰 절로 태조 이성계는 왕에서 내려온 후 이곳에서 수도생활을 했습니다.성종과 명종 때 크게 확장되었으나 그 후 억불정책으로 인하여 절이 불태워져서 현재는 터만 남은 상태입니다.2. 첫 번째 보물 양주 회암사지 사리탑오늘 첫번째 보물을 만나러 가봅시다!첫번째 보물은 양주 회암사지 사리탑 입니다.조선전기 왕실에서 건립한 진신사리탑으로* 진신사리탑: 석가모니의 몸에서 나온 사리를 모신 탑보존상태가 좋으며, 왕실불교미술의 여러 요소를 알 수 있는 귀중한 탑입니다.사리탑은 팔각을 기본으로 구축된 다층의 기단부와 원구형 탑신, 상륜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자! 그럼 다음 보물을 찾으러 가볼까요?3. 두 번째 보물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과 앞 쌍사자 석등다음 보물들을 찾으러 가는 길아~~~~ 이거 맞아?야! 산이 꽤 높은데??이런 산 길을 만날 줄 몰랐던 저희는 힘들었지만우리의 아름다운 보물을 찾기 위한 여정은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드디어 찾게된 두번째 보물!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과 앞 쌍사자 석등입니다.먼저 무학대사탑은 무학대사의 묘탑으로회암사의 주지였던 무학은 이성계의 꿈 풀이를 통해왕이 될 것을 예언한 것과 한양으로 천도와 관련된 설화 등이 유명합니다.쌍사자 석등은 조선 전기 석탑 앞에 건축하는 대표적인 조형 건축물 중 하나로무학대사탑과 함께 조선 전기의 석조 작품의 양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자 그럼 오늘의 마지막 보물을 찾으러 가볼까요?4. 세 번째 보물 양주 회암사지 선각왕사비보물을 찾으려는 저희 앞에 다가온 시련, 돌계단이 있었습니다.드디어 돌계단의 시련을 이겨내고 마지막 보물장소에 도착했습니다!마지막 보물은 양주 회암사지 선각왕사비 입니다.회암사터에 서 있었던 비석으로,고려말의 승려인 나옹 화상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것입니다.비석에는 나옹화상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1997년 보호각이 불에 타 비의 몸돌이 파손되어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보존처리를 실시한 후 비석은 경기도박물관에,비 받침돌인 귀부는 현재장소에 놓여져 있습니다.원형을 알 수 있도록 모조비가 귀부 앞에 세워져 있습니다.드디어 양주 회암사지에서 보물찾기 완료!5. 마무리이상으로 양주 회암사지에서우리의 보물을 찾아보았습니다.우리가 경기도에서 찾았던 모든 보물들은우리가 관심을 갖고 보존을 할 때소중한 보물이 될 수 있습니다.이상으로 문화PD 김경재 PD였습니다.시청해주셔셔 감사합니다.
김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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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7
[문화PD] 어플을 활용하여 쉽게 보물을 접하는 방법이 있다? [경기도 구석구석 보물찾기] EP.3 수원 편
[대본]인트로안녕하세요, 여기는 수원시이고 저는 문화PD 오정은입니다.본론오늘 소개해드릴 곳은 화서문입니다. 보물 제 403호인 화서문은 조선 후기 정조 시대 때 시설물입니다. 화서문은 수원 화성의 서문인데요, 화서문의 형태를 보면 문루가 낮고 안의 전경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화서문은 창건 당시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어 간결하면서도 섬세한 18세기 건축 기술을 보여줍니다.화면전환(화서문 가면서 지침) 더워요..올라가지 않고 미리 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얼마 전에 기사에서 본 내용이 떠올랐다.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아서 폰을 꺼낸다.터치수원 어플 소개터치수원 어플을 통해 화서문을 구경해볼까요?터치수원은 터치 한번으로 관광 정보를 쉽게 즐길 수 있는 어플입니다. 잠깐 터치수원을 살펴볼까요? 터치수원 첫 화면을 보시면, 로그인 후에 AI 추천 코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각각의 테마에 맞는 코스를 직접 추천해주고 있는데요, 이렇게 mz세대들이 좋아할 만한 코스, 이색 탈 거리 코스 등 종류별로 자세히 나와있습니다. 그리고 추천 방문지 BEST10도 소개하고 있는데요, top1은 방화수류정이네요! AR/VR, 오디오 가이드까지 함게 제공되고 있으니 편하게 이용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더 실감나게 즐기는 수원 화성이라는 탭에서는 더 재밌게 즐기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볼거리, 탈거리,즐길거리들을 따로 소개해주고 있는데요, 한번 쭉 보시면서 원하시는 곳을 선택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수원 기념품까지 너무 재밌는 것들이 많네요!그럼 이제 터치수원으로 화서문을 직접 살펴볼까요?AR과 VR을 통해 화서문을 실감나게 관찰이 가능하고, 편리한 오디오 가이드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모바일 화면을 360도로 회전이 가능하여 내부, 외부를 자유롭게 감상이 가능합니다.이 곳은 화서문 내부입니다. 와~ 실제랑 거의 차이가 없는 게 보이시나요?화서문의 야경은 직접 보기 위해 올라갔습니다. 올라가는 내내 힐링이 돼서 힘든지도 몰랐네요. 밤에도 너무 아름다웠던 수원 화서문, 이번 주말엔 수원에 가보는 건 어떠세요?아웃트로보물은 모바일로도 실감나게 접근이 가능하다오늘은 이렇게 수원 화서문을 알아봤는데요, 다음 보물을 찾으러 가볼까요?
오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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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3
[문화PD] 얼굴 크기만 2m? 파주 거대 불상에 얽힌 출생의 비밀 [경기도 구석구석 보물찾기] EP.2 파주 편
[대본]안녕하세요,여기는경기도파주고,저는문화PD한서희입니다.경기도구석구석보물찾기용암사편이곳에숨겨진보물을함께찾으러가볼까요?용암사는고려시대전기에만들어진사찰인데요기도를드리는공간인대웅전안삼존불상이오늘의보물일까요?범종에숨겨진비밀이있을까요?아님계단을메우고있는꼬마좌불상이보물일까요?정답은바로계단끝에있습니다!짠!경기도파주시용암사의주인공!보물제93호로지정된마애이불입상입니다.전체길이만19.85m를자랑하는거대한두불상은천연암벽에새겨신체비율이맞지않아더욱우람하게보이는데요.둥근갓을쓰고연꽃을쥔왼쪽불상이원립불,4각형갓을쓰고합장하는오른쪽불상이방립불입니다.왼쪽불상은남상(男像),오른쪽불상은여상(女像)이라는구전이전해진다고합니다.이불상에신묘한전설이있다고하는데요.고려13대임금선종은대를이을자식이없어고민이많았다고해요.이때셋째부인인원신궁주의꿈에도승둘이나타나우리는장지산남쪽기슭바위틈에사는사람인데,배가고프니먹을것을달라고했다고해요.꿈에서깬궁주는꿈이숭숭해선종에게전했고,그얘기를들은선종이장지산바위에마애이불을새겨불공을드렸더니,그해에궁주가왕자한산후를낳았다고합니다아참,이곳의위치에도특별한사연이있다는사실,알고계셨나요?조선시대,한양과의주를잇는의주대로는중국국경을넘는유명한길이었다고해요.의연암박지원도,한국최초천주교신부김대건도모두이길을걸어국경을넘었답니다.이거대한불석은먼길을오가는사람들에게이정표역할을했다고하네요.조선의주대로78번도로는쌍미륵길이라는이름으로지금까지이어지고있답니다.웅장하고거대한보물을가지고있는이곳용암사에서보물같이소중한시간을보내는건어떨까요?이상문화PD한서희였습니다.다음보물찾기는수원에서해볼까요?
한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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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7
[문화PD] 천년 된 보물을 코앞에서 볼 수 있다!? [경기도 구석구석 보물찾기] EP.1 하남 편
[대본]천년 된 보물을 코앞에서 볼 수 있다!? [경기도 구석구석 보물찾기] EP.1 하남 편 경기도에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 국보와 보물들을 찾아 그에 담긴 역사를 알아본다.경기도의 다양한 지역별로 찾아보는 구석구석 보물찾기 여행.여기는 경기도 하남이고요 저는 문화PD 강산입니다 경기도 하남경기도 구석구석 보물찾기 하남 편 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불을 찾아라!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 소재지 : 경기도 하남시 서하남로588번길 125 선법사 마애 : 석벽에 글자나 그림, 또는 불상 새겼다는 뜻약사여래 : 중생의 질병을 고쳐주는 약사신앙의 대상이 되는 보살. 부처.좌상 : 앉아 있는 모양의 불상.그렇다면! 하남 교산동에 있는 돌에 새겨진 앉아있는 약사여래 부처님이 오늘의 보물이겠네요!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 (河南 校山洞 磨崖藥師如來坐像)Rock-carved Seated Bhaisajyaguru Buddha in Gyosan-dong, Hanam드디어 오늘의 보물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 보물은! 언제? 어떻게? 왜? 보물이 되었을까요? 전문가를 만나보시죠!경기도 문화관광해설사 박경이제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소개해 드릴 보물은 하남시에 있는 선법사라는 작은 절에 있는 마애약사여래좌상 보물입니다 고려시대 때에 마애여래상들이 보통 얼굴 부분은 정교한데 반에 신체 부위나 옷 부분은 생략 또는 정교함이 떨어집니다 그런데 선법사에 있는 마애약사여래좌상만큼은 얼굴, 신체, 좌대 모든부분을 아름다움과 정교함이 어느 약사여래좌상보다 뛰어남을 인정받아서 1989년도에 보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우와~ 그렇군요!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보물이 제 눈앞에 있다는 게 놀라운데요!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잘 보존되었기에 지금 우리가 이렇게 만날 수 있는 거겠죠? 그럼 앞으로 다가올 천년이라는 시간 동안에도 잘 보존되기를 바라면서 경기도 구석구석 보물찾기 하남 편은 여기서 마치고요! 다음 보물 찾기는 경기도 파주에서 해볼까요?우리가 지금 보물을 만났듯이 천년 뒤에도 누군가가 만날 수 있기를..
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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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PD]<독립운동가, 그들의 발걸음 서울에서 만나다> 네 번째 이야기 '시인 윤동주'
[대본]서시, 별 헤는 밤 등의 시로 유명한 윤동주 그는 시인이자 독립운동가로도 알려져 있는데요오늘은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윤동주에 대해서 소개하려고 합니다.[윤동주의 어린시절] 초등학교 시절부터 윤동주는 문학에 관심과 재능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소학교 때부터 친구 들과 새명동이라는 잡지를 발간하기도 했습니다.[윤동주의 대학시절] 1938년, 윤동주는 현재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에 들어가 문과에 입학해 열심히 학업에 입하게 됩니다.대학교를 졸업할 무렵 윤동주는 현재 잘 알려져 있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시집을 내려고 준비하게 됩니다.그러나, 1941년에 조선어 사용이 전면 금지되고, 우리 말로 쓰여진 시집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 됩니다. 윤동주는 시집 발간을 포기하게 됩니다.[윤동주의 일본유학] 윤동주는 일본으로 유학을 가려고 하였습니다. 당시 일본 유학을 위해서는 창씨개명이 필수 였습니다.창씨개명 전에 그는 참회록이라는 시를 쓰게 됩니다. 창씨개명으로 인한 고뇌와 부 끄러움을 써내려간 시입니다. 창씨개명을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부끄러움을 표현하는 것이 죠.[윤동주의 순국] 일본에서 대학생활을 하던 동주는, 방학을 맞이하여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하였습니다.그러나, 윤동주 주위를 검열하던 일본 경찰들이 윤동주를 조선 독립 운동 선동죄로 체포하였고, 조선 유학생들을 모아 독립을 선동했다는 죄명으로 2년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갇히고 맙니다.그는, 광복을 불과 6개월 앞두고, 일본 감옥에서 숨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함께 잡혀간 고종사촌 송몽규에 따르면, 윤동주가 옥중에서 알 수 없는 주사를 맞았다고 합니 다.공식적인 기록은 없으나, 생체실험을 당하다가 일본 감옥에서 숨을 거두게 되었다는 의혹 이 있습니다.광복 후, 유족과 지인들은 윤동주의 시 31편을 모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제목으로 시집 을 발간하게 됩니다.윤동주의 독립운동은, 총과 폭탄으로 행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과, 끝까지 한글 시를 지켜내고자 한 저항 시인이었습니다.이러한 그의 업적을 기리고자, 2012년 윤동주 문학관이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문학관에서는 그의 업적과 작품들을 더 자세하게 볼 수 있습니다.윤동주 문학관 옆 길을 통해 청운공원 주 변 윤동주 시인의 언덕을 갈 수 있는데요.윤동주가 연희전문학교 재학 시절 하숙집에서 가까 운 청운공원 주변을 거닐며 서시, 별헤는 밤 등의 시를 가다듬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윤동주 시인의 대표작 서시 낭독으로 오늘 영상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양하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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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PD]<독립운동가, 그들의 발걸음 서울에서 만나다> 세 번째 이야기 '백범 김구'
[대본]김구선생의발자취는백범김구기념관에서찾을수있었다.김구선생의호백범에서도그의조국독립을향한강한의지를엿볼수있다.백범은평범한사람들이라는뜻으로,평범한사람들이곧우리의민중이고,민중은곧애국심을가지고조국독립의필요성을깨쳐야한다는의미이다.1896년3월,황해도치하포의주막에서김구는일본군중위쓰치다조스케를발견하였다.김구는그가명성황후를시해한범인일것같다는생각이들자,명성황후를시해한원수를갚고나라의수치를씻는다는우국의일념으로그를처단하였다.1910년,김구는대표적인항일민족단체인신민회에서,조국의독립운동기지건설을위한비밀회합에황해도지역자금모금책임자로참여하였다.1919년,김구는상하이로망명해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경무국장에임명되었다.그는독립운동가들을보호하고만세운동을통해독립의지를전세계에알렸다.1930년,김구는일제요인암살과식민통치기구의파괴를위한특무대한인애국단을조직했다.일제의탄압속에서도그는무장투쟁을이어가며강한독립의지를내비쳤다.1940년,김구는임시정부의국군,한국광복군을창설하였다.광복군이대일항전을전개하고국내진입작전을시도한것은조국의독립과민족의해방을자주적으로쟁취하려는한민족의자주독립에대한의지를상징하는것이었다.그리고1945년,광복군의국내진공작전직전일본의항복으로한국이광복을맞았지만,진정한대한독립을이루지못해마냥기뻐하지못한김구였다.그리고지금,우리가할수있는것.백범김구선생을기억하는것이다.우리는김구선생을기억합니다.
박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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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PD]<독립운동가, 그들의 발걸음 서울에서 만나다> 두 번째 이야기 '도산 안창호'
[대본][타이틀]대한민국의 근대화와 독립운동에 평생을 몸 바친 도산 안창호 선생.안창호 선생의 삶이 보여준 정신을 본받아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나가고자 도산공원이 조성되었고,공원 내부에 도산 안창호 기념관이 건립 되었다.도산 안창호 선생의 삶의 발자취를 따라 도산공원을 거닐며자주와 독립을 위하여 그가 바친 위대한 애국정신을 기리고자 한다.독립, 그 이상의 미래를 꿈꾸다 - 도산 안창호[본문]1878년 평안남도 대동강 하류 도롱섬에서 도산 안창호 선생이 태어났다.그가 열여섯 살 때 청일전쟁이 일어났고, 당시 평양에서 전투가 벌어져 주민들이 피난하고 가옥들이 파괴되는 것을 목격하였다. 이때 도산은 우리 민족의 불행이 우리에게 힘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일생을 바칠 것을 결심하게 되었다.도산은 19세 때 독립협회에 가입하고 평양에 독립협회 관서지부를 결성하였고,쾌재정에서 만민공동회를 개최하여 첫 연설을 함으로써 탁월한 웅변가로 명성을 떨치게 된다.도산이 독자적인 사회세력을 결집하여 주도하는 자리에 서게 된 것은미주의 교민사회에서 공립협회를 만든 다음부터였다.1902년 유학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지만,그곳 동포들의 어려운 처지를 보고 공부를 포기하고 교민지도에 나서게 된다.그리하여 초창기 미국 교민사회에서 대중적 지도자로서 성장해 공립협회의 초대 회장이 되었다.공립협회는 2년 미만의 단기간에 600명의 회원을 모으고,3층 건물을 회관으로 가졌으며, 매월 두 차례 공립신보를 발간해 매우 힘있는 단체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했다.도산이 미국에 있던 5년 동안 국내정세는 날로 위기가 깊어지고 있었다.도산은 본격적인 구국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1907년 초 귀국 길에 올랐다.이 때 그의 가슴 속에는 이미 국내에서 전개할 구국운동의 새로운 목표와 방법론, 조직형태가 그려져 있었다.귀국 즉시 도산은 국내 계몽운동의 핵심인물들을 찾았다.그는 새로운 구상을 설명하면서 비밀결사를 조직하는 일에 착수하고,한말 애국지사들의 구국운동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총지휘했던 신민회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도산은 신민회를 중심으로 교육ㆍ언론ㆍ산업 등 여러 부문에 걸쳐 다양한 사업들을 벌이게 하였다.일제에 의해 강제로 해산당할 때까지, 약 3년간 그가 주도했던 신민회운동은비록 나라를 지키는 데는 실패하였지만 일제하의 독립운동에 커다란 원동력이 되었다.1910년 5월 통합 교민단체로 대한인국민회가 결성되었다.이는 해외의 전교민이 도산을 대표자로 하여 하나의 조직 속에 결집한 셈이었다.국내가 일제의 지배하에 들어간 상황에서 도산은 해외에 사는 교민들이 현실적인 독립 운동의 기반이라고 생각하여 해외 한인의 총단결을 가장 우선적인 과제로 여겼다.해외 한인의 대동단결이라는 과제를 일단 해결한 도산은 다음 해인 1913년 흥사단을 조직하였다.흥사단은 민족운동의 간부를 양성하려는 목적에서 만든 훈련단체로 미국에 본부를 두었다.1918년 국제 정세 속 독립운동에 대한 열기가 고조되었다.이듬해 3ㆍ1운동 소식을 접한 도산은 독립운동에 착수할 수밖에 없다고 결심했고,국민회의 대표 자격으로 중국에 건너갔다.도산은 국무총리 대리를 겸하면서, 임시정부의 실체를 갖추는 데 전력을 쏟았다.국민회에서 가져온 자금으로 정부청사를 얻고 각료로 추대된 각지의 인물들을 불러 모았으며 독립신문 발간과 독립운동 방략 작성을 주도했다.임정을 권위 있는 최고 지도기관으로 만들어 장기적인 독립운동에 대비하고자서울의 임시정부와의 통합을 추진하였고, 노력 끝에 결국 통합을 이루어냈다.이승만 대통령까지 합류함으로써, 임정은 독립운동의 최고 지도 기관으로서 면모를 갖추었지만임시정부 내 갈등이 심각해졌고, 임정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임정을 사퇴하고 국민대표회 개최를 위해 노력했다.1926년 5월 말 다시 상해로 간 도산은 좌우 합작의 대독립당운동에 앞장섰다.산발적으로 논의되는 데 그치고 있던 좌우합작문제를 본격적인 실천운동으로 끌어올린 사람이 도산이었다.1931년 일제가 만주를 침략하자 도산은 기회가 오고 있다고 판단하여 반일투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윤봉길 의거의 여파로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국내로 끌려오게 되었다.도산은 4년 반에 걸친 두 차례의 감옥 생활 끝에 얻은 병이 악화되어1938년 3월 10일 만 59년 4개월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옥중심문에서 일본 관헌에게 도산은 이렇게 말했다.나는 밥을 먹어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잠을 자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서 해 왔다. 이것은 내 목숨이 없어질 때까지 변함이 없을 것이다.독립 운동가이자 겨레의 큰 스승 도산 안창호 선생.무실역행을 몸소 실천한 그의 삶의 발자취를 따라그 위대한 정신을 마음속 깊이 새겨본다.
송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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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PD]<독립운동가, 그들의 발걸음 서울에서 만나다> 첫 번째 이야기 '안중근 의사'
[대본] 독립운동가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첫 번째 발걸음 오늘 소개해 드릴 곳은 안중근 의사 기념관입니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은 남산타워와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매번 남산에 올라갈 때, 한 번쯤 지나쳤던 곳인데 이곳을 직접 들어와서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1층에는 안중근 의사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에서 안중근 의사는 일본의 초대 통감 이토를 하얼빈 역에서 제거한 의거를 떠올리기도 하고 뮤지컬을 통해 안중근 의사의 재판 장면을 쉽게 떠올릴 수 있는데요 이번에 제가 다녀온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서는 안중근 의사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해서 더 관심 있게 보고 왔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저는 사실 안중근 의사를 떠올리면 하얼빈 의거가 크게 각인 되어서 안중근 의사는 무장독립 투쟁을 하셨던 분이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국내 정세가 혼잡하고 외세의 침입과 이권침탈이 잦아진 시대적 배경에서 동학농민운동에도 함께 하셨고 대한민국을 지키고자 애국계몽을 위한 교육 운동에도 힘쓰셨던 일들이 1층 전시관에 자세하게 써있었습니다 우리가 일본과 맺은 불평등 조약에 분개하고 이 내용을 세계에 알리고자 한 지식인이자 독립운동가의 모습으로 다시 안중근 의사를 볼 수 있었던 전시였습니다 그리고 안중근 의사의 가문에서는 무려 15인에게 건국훈장을 수여했다고 하는 데요 그만큼 가족에게 본이 되는 부모님과 그 뜻을 이어나가는 집안 분위기가 이렇게 독립운동가들을 가득 배출해낸 이유인 것 같아요 그리고 2층으로 올라가면 본격적인 하얼빈 의거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하얼빈 의거 상황을 기차의 형상으로 재현한 곳이 있었는데요 공중전화의 수화기를 통해 안중근 의사의 현재 심경과 각오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 나는 이토를 기다리기 위해 하얼빈 역 찻집에 있소 이토를 알아보고 일을 거행할 수 있을지 걱정되오 그러나 기회는 오직 이때뿐 신문에서 전하길 아침 9시쯤 열차가 여기에 도착할 것이라고 하니 곧 그를 만나게 될 것 이오 반드시 이 거사를 성공시켜 곧 그를 만나게 될 것 이오 이 머나먼 외국 땅에서 당당하게 대한 만세를 외칠 것이오 아... 열차가 도착하고 있군 이만 가보겠소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면 의거가 어떻게 계획되고, 진행되었는지 당시 그곳의 상황은 어땠는지 의거 장면이 한 켠에 재현되어 있었고 왜 이토 히로부미를 없애야 하는 지 그에 대한 히스토리가 상세하게 적혀있었습니다 그리고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의거에서 사용하셨던 권총과 총알도 있었습니다 전시관을 따라가면 이어지는 곳은 자주독립을 향한 그의 재판 장면이 나타납니다 벽의 버튼을 누르면 재판 장면으로 꾸며진 세트장에서 조명과 함께 목소리가 나오면서 마치 연극처럼 그 상황이 재현됩니다 저도 안중근 의사의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방청석에 앉아봤는데요 자리에서는 앞에 있는 화면을 통해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이유이자 그의 15가지 죄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었어요 1.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2. 한국 황제를 폐위시킨 죄 3. 5조약과 7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죄 4. 무고한 한국인들을 학살한 죄 5. 정권을 강제로 빼앗은 죄 6. 제일은행권 지폐를 강제로 사용한 죄 7. 철도, 광산과 산림, 천택을 강제로 빼앗은 죄 8. 군대를 해산시킨 죄 9. 교육을 방해한 죄 10. 한국인의 외국 유학을 금지시킨 죄 11. 교과서를 압수하여 불태워버린 죄 12. 한국인이 일본인의 보호를 받고자 한다고 세계를 속인 죄 13. 현재 한국과 일본 사이에 싸움이 그치지 않아 살육이 끊이지 않는데 한국이 태평 무사한 것처럼 위로 천황을 속인 죄 14. 동양 평화를 파괴한 죄 15. 일본 천황의 아버지인 태황제를 시해한 죄 이렇게 이토히로부미의 15가지의 죄에 대해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안중근 의사의 자서전 안응칠 역사를 만나 볼 수 있었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1909년 12월 13일 옥중에서 집필을 시작해서 다음 해 3월 15일까지 탈고한 자서전인데요 안중근의 탄생부터 순국 전까지의 민족과 국가를 위해 살아오신 삶에 대해 기술되어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전시관에서는 체험과 퀴즈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어요 아이들과 함께 온다면 안중근 의사에 대해 오늘 전시를 어떻게 봤는지 정리하고 마무리할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저도 문제를 풀어봤는데 몇 문제는.... 틀렸더라고요 더 열심히 볼 걸 그랬나봐요 그러면서 또 많은 공부가 됐던 것 같아요 이렇게 안중근 의사의 발걸음을 서울에서 함께 따라가보았습니다 오늘도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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